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랩 따라하기

요즘 대중 음악의 주요 구성 요소인 랩과 힙합 리듬은 세대간 적응도를 극명하게 갈리게 하는 것들이다. 10대와 20대의 젊은 층일수록 랩을 구사할 수 있고 힙합 리듬을 잘 탄다. 30대도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40대 이후의 대부분 사람에게 랩과 힙합 리듬은 익숙하지 않아 때로는 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50, 60대 이후 세대들은 아마 랩과 힙합 리듬을 외면할 것이고 심지어는 심한 불쾌감을 느끼며 음악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40대 이후 세대들이 일정한 톤으로 일정한 리듬에 의해 읊조리는 랩을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속사포같이 빠른 랩을 구사하는 것은 감히 꿈꾸기도 어렵다. 힙합 리듬도 마찬가지이다. 10대와 20대들이 힙합 리듬을 자연스럽게 탈 수 있는 데 비해 40대 이후는 어색한 몸짓으로 흐르기 십상이라 아예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자칫 스타일을 구길 수 있기 때문에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이렇듯 랩과 힙합 리듬은 세대간 차이를 극명하게 한다. 그래서 노래방에서는 때때로 세대 갈등과 세대 화합의 모습이 빚어지기도 한다. 회사 부서 회식을 노래방에서 하게 될 때 20대의 젊은 사원들은 최신 곡들을 빠른 속도로 찾아 랩을 적절히 구사하면서 멋지게 노래를 부른다. 40대 이후의 선배 사원들이나 간부들은 후배들과 호흡하기 위해 최신곡들을 기웃거려 보지만 곧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에게 맞는 노래를 한참 뒤진 끝에 겨우 한 곡조 부른다. 그러다가 선배 사원 중 하나가 후배들과 호흡할 수 있는 최신곡을 한 곡 부르면 동료 선배 사원들은 기가 살아 분위기를 맞추고 후배 사원들도 존경스런 시선으로 바라보며 분위기를 돋운다. 후배들 역시 선배들이 편안해 하는 노래로 답가를 부르면 노래를 둘러싼 미묘한 세대 갈등은 어느새 화합의 장으로 승화된다.

40대 이후 세대들은 사실 랩을 따라할 욕구조차 느끼지 않는다. 랩과 힙합 음악은 10대와 20대에겐 자연스레 리듬이 몸에 밴 음악이지만 40대 이후 세대들에겐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한 음악이라 받아들여야 할 욕구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40대 이후의 세대들에겐 그들만의 음악이 따로 있다. 리듬보다는 멜로디가 강조되는 1970~1990년대 가요들과 팝송, 록 음악이 그들의 음악이다. 10~20여 년 전 강한 비트가 있더라도 멜로디가 있는 록 음악을 저항적 정서로 받아들였던 젊은이들은 이제 안정을 희구하는 40대 전후 세대가 되어 있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직설적인 감정을 토해내는 랩과 힙합 음악은 피가 뜨거운 지금의 10대와 20대의 음악인 것이다.

세대별 대중 음악 취향이 다르고 분화되는 양상은 과거에 비해 더 강해지는 것으로 느껴진다. 다른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는 정도가 과거에 비해 더 커진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어느 시대의 음악이 더 좋았느냐 하는 논쟁도 때로 벌어질 수 있겠다. 비틀스와 펄시스터즈의 1960년대냐, 나훈아'남진'통기타 가수들'엘튼 존의 70년대냐, 마이클 잭슨과 조용필의 80년대냐, 신승훈'김건모'휘트니 휴스턴의 90년대냐 하는 논쟁 말이다. 누구나 자신이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접했던 음악의 연대를 최우선시하겠지만 나이 든 사람일수록 속성상 과거의 음악이 풍요로웠다는 데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어떤 장르, 어느 시대의 대중 음악이든 사랑받는 음악에는 본질적 이유가 있다. 애절한 사랑의 정서를 호소하거나 삶의 거친 에너지를 발산하는 등의 이유가 있고 그것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술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요즘은 정신보다는 기교가 승한 음악이 득세하고 있다.

랩과 힙합은 발생지인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거친 저항보다는 개인의 내밀한 고백과 결합하고 흥겨운 댄스 리듬에 얹어져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꽃미남, 꽃미녀의 아이돌 댄스 그룹들이 이러한 음악을 내세워 대중들과 정서적 공감을 나누기보다는 대중들의 감각을 장악하는 데 골몰해 있다. 음악산업의 발전이 가져온 맹점이다. 그래서 주류 대중 음악에 대한 세대 간 거리감은 커져만 가고 한편에선 새로운 음악의 출현을 기다리는 것이다.

김지석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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