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다가올 정월대보름을 앞두다 보니 추위도 잊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뛰어놀던 어린 시절 추억이 생각난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 겨울철 놀이인 팽이치기, 썰매 타기, 연날리기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부모님이나 형들이 대나무를 깎아 연을 만들어 주면 흰색 바탕에 친구들 연보다 조금이라도 특이하게 보이려고 태극 문양이나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 넣고 연 싸움을 위해 연줄에 돌가루, 사기가루 등을 발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바뀌고 옛날 뛰어놀던 논, 밭이 어느새 아파트들로 변해 이제는 맘 놓고 연 한 번 날려보기도 쉽지 않다. 점점 우리 전통 문화나 중'장년층의 설 자리가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과 비슷하다.
연(鳶)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희망'이란 단어가 연상된다. "풀 먹인 연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본다. 하늘 높이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라는 노래 가사처럼 저 하늘로 올라가는 연에 질병, 사고, 흉년 등의 나쁜 액운은 멀리 사라지고 복이 찾아오도록 '송액영복'(送厄迎福)의 마음을 담아 날렸다.
특히 연에는 우리네 조상의 길흉화복도 담겨 있다. 우리 지역과 관련 있는 삼국유사 기록만 봐도 선덕여왕 때 비담의 난과 관련하여 연은 승패의 결정적인 매개체로 등장한다. 김유신 장군의 지혜로 연에 불을 붙여 날리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는 다르게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순신 장군도 바다에서 연을 신호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 연이 결국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며 우리나라를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때 연은 운명을 가르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조상의 지혜만 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 지역도 매년 겨울철 관광객 감소를 우려하고 있지만 특단의 대책은 아직 요원하다. 오늘 문득 연에 대한 단상에 젖다 보니 경북만의 특징을 살려 겨울철 연날리기를 관광프로그램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화 유적이 상대적으로 많은 경북 지역에 어울리는 겨울철 놀이이기도 하고 넓은 자연에서 즐기다 보니 도시에서는 쉽게 경험하기가 어려운 놀이면서, 부모님과 아이가 힘을 합쳐 연을 만들며 세대 간의 정을 쌓을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다. 놀이 하나로 이렇게 세대 간을 이어주는 것도 찾기 힘들다.
특히 경주에 있는 첨성대 옆 잔디밭은 역사성이 함께 있어 연날리기에 금상첨화의 장소이다.
그리고 연날리기는 우리만의 놀이가 아니라 세계인의 놀이이기도 해 외국인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각 나라별로 특성에 맞는 다양한 연을 날리고 있지만 그들이 날리면서 기원하는 바는 공통적이리라.
사람은 '신바람'과 '희망'이 있으면 어떤 고통도 이겨낸다. 매일 컴퓨터 앞에서 노는 요즘 아이들도 연을 날리면서 신바람이 나면 추위는 금세 잊고 바로 놀이에 빠져버린다. 2009년은 우리 모두에게 어려운 한 해였다. 그러기에 2010년은 더욱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아마도 정월대보름에 달집 태우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이 소원을 빌 것이다. 하지만 그날 우리는 달집을 태우면서 소원만 빌 게 아니라 넓은 들판으로 나가 연날리기를 통해 바람과 밀고당기는 타협의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날다가 떨어지고 다시 날고 하는 연을 통해 우리네 인생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로가 자기만의 고집을 버리고 상생의 희망을 담아 하늘 높은 곳으로 연을 날려 볼 필요가 있다. 관(官)과 민(民) 모두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다면 그것이 희망이 되고 신바람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 민족은 신바람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민족이다.
이번 다가오는 정월대보름에는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백호의 해를 맞아 우리들의 고민도 신바람나게 풀렸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가족끼리 밖으로 나가 연을 한번 날려보자. 희망은 앉아서 기다리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해 찾아야 한다는 조상의 지혜를 연을 통해 몸소 느껴보자.
진병길 신라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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