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쉰 넘은 며느리에 올해도 용돈
설날 아침입니다. 올 이도, 갈 곳도 없는 우리 가족은 어머님을 모시고 세배를 드립니다.
"어머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오냐, 너희 둘도 부디 몸 건강하고, 서로 아끼며 재미나게 살아라~."
어머님은 올해도 진심 어린 덕담과 함께 오십이 넘은 우리 부부에게 세뱃돈을 주십니다.
"딴 돈하고 섞지 말고 꼭 보약 한 첩씩 지어 묵어라. 너희 머리에 서리 내린 것을 보니 내 가심이 찢어지는 거 가따."라는 말씀과 함께. 시집 온 그해부터 어머님은 제게 꼭꼭 세뱃돈을 챙겨주셨습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부지라는데, 우리 며느리는 시아부지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몬 했으이. 얼매나 안타깝노. 내라도 부자라면 돈을 좀 넉넉하게 줄낀데, 적지만 이걸로 옷 하나 사 입어라." 이렇게 해마다 세뱃돈을 챙겨주시던 어머님이십니다.
청상에 홀로 되어 외아들을 기르면서 살아낸 세월이 오죽 힘드셨을까마는 그런 내색은 전혀 없으시고, 그저 자식들에게 많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씀만 하십니다.
어머님은 당신이 받은 서러움보다 행여 자식이 남에게 눈총을 받고 클까 염려하시고, 특히 명절 때면 더욱 외로운 우리들의 처지를 당신 탓인 양 가슴 아파하십니다.
우리 부부 뒤를 이어 세배를 하는 손주들에게도 공부 열심히 하라는 당부와 함께 평소 어머님의 씀씀이로는 과하다 싶을 만큼의 넉넉한 세뱃돈을 주십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몫의 세뱃돈까지 할머니로부터 다 받고, 난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시아버님의 세뱃돈까지 어머님으로부터 받습니다.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아들, 며느리, 손주들의 세뱃돈을 챙기시는 어머님의 사랑이 눈물겹습니다.
어머님은 이 돈을 모으시려고 엄동설한 추운 겨울밤에도 보일러 기름값을 아끼셨을 것입니다. 어머님이 추위에 떨었던 시간만큼 우리들은 어머님의 사랑에 가슴이 뜨겁습니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어머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에 비해 우리들은 정말 아무것도 제대로 해 드린 것이 없습니다.
남편과 나는 이 돈으로 어머님의 소원대로 보약을 지어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어머님의 보약도 함께 지을 것입니다.
어머님, 오래도록 어머님의 세뱃돈을 받고 싶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정경준(대구 수성구 만촌1동)
♥ '부의'봉투에 세뱃돈 해프닝
나는 아직은 세배를 받을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서 세배 받는 걸 피해 왔었다.
설날 큰댁에 가면 조카 며느리가 다섯 명이나 된다. 설만 되면 세배 드린다고 붙잡으러 다니고, 피해 다니느라 소동이 벌어진다. 첫째는 남편이 한사코 세배를 받지 않으려 하고 난 자동으로 남편 뜻에 따르다 보니 세배 받는다는 게 영 어색했다. 세배는 안 받아도 손자 손녀가 많다 보니 용돈은 수월찮게 많이 나간다.
작년 설 때 아들의 세뱃돈 얘기다. 2008년 12월 15일부터 회사에 출근한 아들은 설 전까지 일하고 설을 쇠러 집엘 왔다. 취직이 안 된다고 난리들인데 그 와중에 취직을 해서 설 쇠러 왔다는 게 참으로 대견하기만 했다.
설날 아침에 부모님께 먼저 세배 드린다고 극구 마다하는 남편과 나를 붙잡아 앉혀 놓고선 지 누나랑 세배를 하는 것이다. 엉거주춤 앉아서 세배라는 걸 처음 받아 보았다. 그리고 둘이서 똑같이 봉투를 내미는 것이었다.
같이 받아들긴 했는데 아들이 주는 봉투가 어째 조금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 얼른 다른 방으로 가서 확인을 해보니, 아들이 준 봉투 앞면에 한문으로 '부의'란 글씨가 찍혀 있었다. 아들을 불러서 이 봉투가 어째서 생긴 봉투냐고 물었더니 편의점 가서 세뱃돈 넣을 거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 봉투를 달라고 했단다.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문을 잘 모르는 아들 탓인지 편의점에서의 실수인지, 얼마 일하지 않은 월급을 몽땅 털어서, 그것도 남편이 수표를 좋아하는 줄은 잊어버리지도 않았는지 빳빳한 수표를 바꿔서 넣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마무리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
난 얼른 남편이 눈치 챌까봐 돈만 꺼내서 남편을 주고는 봉투를 감춰버렸다.
세뱃돈이라고 처음으로 받아본 돈이, 그것도 아들의 첫 월급으로 받은 세뱃돈이 부의금으로 부모에게 전해졌으니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남편과 난 오래 살지 않을까?
손해숙(의성군 금성면 산운2리)
♥ 친척들 너도나도 딸애 입학축하금
"동서! 내가 동서네 집 앞으로 갈 테니 20분 뒤 쪽문에 나와 있어." 차례 상을 차릴 장을 같이 보러가자는 형님의 전화다.
쪽문에 서 있은 지 5분, 차 한대가 내 앞에 섰고 난 차를 타고 재래시장으로 갔다. 풍성하게 진열된 설빔들을 바라만 봐도 기분은 고조될 정도로 명절 분위기에 휩쓸려 우리도 메모해온 장보기 메뉴를 점검해가면서 한 바퀴 돌았을까.
손수레가 넘칠 정도로 장을 보고 바로 형님네 집으로 가 다듬고 부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설 차례 준비는 수월하게 끝날 수 있었다.
"동서야 시간도 있는데 우리 마사지할까?" 형님이 방 온도 조절을 해놓고 둘이 나란히 누워 팩을 바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설을 맞이하였고 형님은 한복 대신 치마를 입고 세배를 하자면서 미리 준비한 긴 치마를 꺼내주었다. 형님이랑 똑 같은 반짝이 긴 치마를 입고 서 있는데 쌍둥이 같다면서 조카들이 웃는다.
이렇게 반짝이 치마를 입고 세배를 했고 친지들을 맞았다. 훌쩍 커버린 조카들은 서로 세뱃돈 챙기느라 각자 준비한 지갑을 열고 닫느라 들떠 있는 분위기에 세뱃돈을 주는 입장에서도 더 주고 싶을 정도로 즐거움을 선물 받았다.
늘 이렇게만 살 수 없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밝은 모습들이 흐뭇하니 좋았다. 짧기만 한 시간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대학생이 되는 딸아이가 그랬다.
"엄마 나 세뱃돈 엄청 많이 받았어. 울산 아재가 십만원 주고 서영이 언니야가 십만원 주고…" 친척들에게 받은 세뱃돈에 신이 나서 내뱉는 딸아이의 말에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내 딸 아이가 대학생이 된다는 말도 한 적 없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미안할 정도로 챙겨준 정성에 감사해 난 전화기를 잡았다.
이동숙(대구시 북구 복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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