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나는 살해당했다."
독특한 스릴러다. 14세에 살해당한 여주인공, 도대체 뭘 이야기하자는 걸까.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감독이 5년 만에 들고 온 신작 '러블리 본즈'는 이런 의문으로 관객의 흥미를 끈다.
범죄,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러블리 본즈'는 상실과 상처를 치유하는 드라마다. 열네 살 소녀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을 다루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추적하기보다 살해당한 소녀와 그의 가족이 어떻게 이를 이겨내고 상처를 치유하는 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73년 12월 6일. 14세 소녀 수지 새먼(시얼샤 로넌)은 '첫 키스는 어떤 맛일까' 라는 상상으로 두근거리는 꿈 많은 소녀다. 평소 짝사랑하던 남자로부터 첫 데이트 신청을 받고 부푼 가슴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날, 수지는 이웃집 남자 하비(스탠리 투치)의 꼬임에 빠져 그가 만든 지하 벙커에서 살해당한다.
억울하게 죽은 수지는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천국과 지상의 경계를 떠돌며 자신의 죽음 때문에 고통 받는 가족들을 바라본다. 아빠 잭(마크 월버그)은 딸을 살해한 범인을 추적하느라 가족을 내팽개치고, 엄마 애비(레이첼 와이즈)는 빨리 잊고 새 출발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옆집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연쇄살인마 하비는 수지의 동생을 대상으로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한다.
'러블리 본즈'는 63주간 베스트 셀러에 오르며 1천400만부가 판매된 작가 앨리스 세볼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탄탄한 원작에 피터 잭슨의 신작, 흥행귀재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작에 레이첼 와이즈, 수전 서랜든, 스탠리 투치 등이 출연, 관심을 끄는 작품이다. 수지 역의 시얼샤 로넌은 2008년 '어톤먼트'에서 13세 소녀로 깜찍한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수지가 머무는 사후 세계를 피터 잭슨 감독 특유의 판타지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넓은 초원, 나무와 호수, 내려앉은 하늘 등 마치 꿈속에나 있을 법한 장면을 화려한 그래픽으로 재현하고 있다. 죽음과 상실, 돌아갈 수 없는 절박한 수지의 감정과 함께 10대 소녀가 상상할 만한 꿈같은 세계가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그려진다.
'러블리 본즈'는 스릴러이면서 사후 성장이란 색다른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구천을 떠돌면서도 복수보다는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수지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녀의 감수성과 피터 잭슨이 그려내는 환상적인 화면 등이 돋보이지만, 그 저변에는 음산함과 끔찍한 기운들이 흐르고 있다.
연쇄살인마 하비의 잔혹한 살해 행각이 엽기적이다. 넓은 옥수수밭 한 가운데 땅굴을 파고 소녀를 유혹하는 것이 낯설면서도 섬뜩하다. 딸을 잃은 슬픔에 온 집안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 고통의 장본인은 너무나 평온하게 살며, 또 다른 살인을 꿈꾸는 현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비극은 먼 곳이 아니라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태연하게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영화들은 많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는 어린 시절 겪은 상처로 고통 받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렸고, 영국 영화 '할람 포'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상실의 고통을 겪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두 영화는 상처의 본질, 현실을 직면하는 것으로 상처를 극복한다.
부정하고 도피하거나, 아니면 상처를 환상 속에서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하는 것도 상처 치유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두려운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모든 악의 근원을 반지에 담아 용암 속에 던져 넣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러블리 본즈'는 현실의 아픔을 낭만적 판타지 속으로 도피하는 것으로 쉽게 끝내 버린다. 신비로운 화면과 소녀의 낭만적 상상력, 사악한 기운들이 혼재되어 낯선 스릴러 판타지가 되어버렸다. 주인공들은 고통에서 울부짖지만 그 뼈저리게, 살점을 도려내는 아픔을 관객이 공감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제목은 아픔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는 사랑을 뜻한다. 수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옥수수밭에 모이는 것처럼, 시련을 겪지만 결국엔 단단한 사랑으로 이겨내는 위대한 유대감이란 뜻이다. 상영 시간 135분. 25일 개봉 예정.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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