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한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년)은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라는 실제 주인공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는 1960년대 기발하고도 대담한 수법으로 갖가지 사기 행각을 벌인 범죄자였다. 70년대 중반 감형을 받고 다시 사회로 나와 FBI 금융 범죄 대책반에서 30년 넘게 일하며 현재 금융 보안 전문가로 수백억 원의 재산을 일궈 인생 역전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6세에 가출, 뉴욕 거리를 전전하다 맨해튼의 팬암 본사를 보고 그의 사기 본능은 본격화된다. 그의 머리를 스쳐간 아이디어는 바로 팬암 조종사로 위장해 돈을 번다는 것. 실제 프랭크 아담스라는 가명으로 팬암 월급 지불 수표를 위조해 50만 달러의 거금을 챙겨 멕시코로 달아나기도 했다. 통념과 인식의 허점을 찌르는 감쪽같은 신분 위장으로 주변 사람들을 속이는 그의 사기 수법을 두고 범죄학자들은 '대담한 사기꾼의 전형'으로 꼽는다.
그는 하버드대 메디컬스쿨 출신 레지던트라는 위조 신분으로 소아과 야간 근무 의사로 일하는가 하면 뉴욕 컬럼비아대 사회학 박사로 위장해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위장 수법이 얼마나 교묘했던지 당시 미국 경찰은 "애버그네일은 화장실 휴지로도 수표를 위조해 찍어낼 수 있고, 자유자재로 신분을 바꿔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26개국으로부터 체포 영장을 발부받을 만큼 그의 사기 수법은 화려하고 능수능란했다.
어저께 경찰이 무슬림 성직자로 신분을 위장해 대구에서 6년 넘게 탈레반 비밀 활동을 해온 파키스탄인 J씨를 구속했다. 그는 형의 여권에 자기 사진을 붙여 17차례나 국내외를 드나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파키스탄 정부가 발행한 자신의 사망증명서까지 만들어 제시하는 등 신분 세탁으로 경찰 눈을 따돌렸다.
그동안 해박한 종교 지식을 무기로 '이맘'으로 존경받았고 한-파키스탄 친선교류회장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탈레반이었다'는 그의 회고록 내용과 수십억 원에 달하는 통장 입출금 내역이 의심을 사면서 꼬리가 잡히고 말았다. 통념과 시스템의 허점을 노린 '동양판 애버그네일' 사건에 시민들은 아연할 뿐이다. 특히 이슬람 의식화는 곧 테러를 연상할 만큼 민감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그의 사기 행각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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