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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서 도우니 기부가 즐겁죠"…대구 거주 외국인들의 자선 파티

20일 오후 대구시내 한 영어카페에서
20일 오후 대구시내 한 영어카페에서 '대구씨어터트루프' 단원들이 자선기금 마련을 겸한 공연을 하고 있다.

"즐기면서 돕고 싶어요."

대구 거주 외국인들에게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파티'(Party) 문화가 있다. 사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친구들끼리 모여 밤새 즐긴다. 하지만 그들에게 파티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놀이가 아니라 기부와 나눔의 장이다. 즐기면서 돕는 그들의 파티 문화는 대구 사회와의 신선한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20일 오후 7시 대구시내 중심가 한 영어카페. 의자와 탁자를 한쪽으로 밀어 만든 특설무대에 외국인들이 섰다. 상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대사를 하는 것이 제법 폼이 난다. 대사 한마디, 동작 하나를 숨 죽여 지켜보던 관객들은 때론 웃으며 때론 손뼉치며 배우들과 교감했다. 이날 공연은 2008년 9월 구성한 외국인 프로젝트 극단 '대구씨어터트루프'(DTT·Daegu Theater Troupe)가 주최했다. 공연 형식을 빌린 자선 파티로, 공연 제목은 '카바레 코미디의 밤'(Cabaret Comedy Night)으로 정했다. DTT는 캐나다 출신 크리스틴 마이어스(Kristin Myers·24·여)씨가 발족한 모임. 캐나다에서 연극을 공부한 마이어스씨는 "한국에 와서 연극을 하고 싶어 온라인 모임을 통해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모으게 됐다"고 했다. 반응은 괜찮았다. 첫 모임에만 25명의 외국인이 동참했다. DTT는 공연 수익금을 기부금으로 쓴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들을 돕는 데 쓰자는 취지다. 지난해엔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기도 했다. 이번 행사 수익금 전액은 경북 구미에서 다문화가정·이주노동자 지원사업을 하는 '마하붓다센터'로 보낸다. 마이어스씨는 "이웃돕기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정말 고맙다"고 웃었다.

앞서 이달 6일 계명대 성서캠퍼스 주변 한 주점에서는 영어 강사 2명이 주축이 돼 '아이티 난민돕기 자선 파티'가 열렸다. '1일 주점' 형식의 행사로 소중한 사람과 재산을 잃은 아이티 국민을 돕는다는 취지에 70여명의 손님이 찾아 따스한 온정을 보탰다.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자선행사도 있다. 성탄절을 앞두고 기금을 마련해 아동시설에 보낸다.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낼 수 없는 외국인들이 오찬이나 만찬을 함께하며 불우 어린이를 돕는 형식이다. 이처럼 파티와 자선을 혼합한 행사가 줄을 잇는 까닭은 외국인들에겐 일상이나 다름없기 때문. 지난해 케냐 돕기 자선행사로 패러글라이딩을 기획한 트레이시 맥마흔(30·여·영국)씨도 "참가자들에게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티를 즐기면서 남을 돕는다는 개념은 아직 한국 사람들에겐 낯설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국인은 "흥미롭지만 왠지 어색하다"면서도 자선파티의 취지에는 한결같은 성원을 보냈다. 마하붓다센터 진오 스님은 "저마다 쉬는 시간에 모여서 즐기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외국인의 정서이긴 하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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