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변인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에서 오이 농사를 짓는 이은수(45)'김성호(45'여)씨 부부는 예사 농사꾼이 아니다. 학사 출신으로 고향에서 20년 가까이 흙과 더불어 살아온 이들 동갑내기 부부는 새로운 농촌공동체를 꿈꾸며 살고 있다.
철학도였던 남편 이씨와 국문학도였던 부인 김씨는 충남대 캠퍼스 커플. 왜관이 고향으로 대구 심인고를 졸업한 이씨와 충남 온양 출신인 부인 김씨는 대학 내 탈춤 동아리에서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농촌 출신인데다 농활과 농민운동에 관심을 둔 것이 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문학 소녀였던 부인 김씨도 묵묵히 남편과 한길을 걸어왔다. 금남오이작목반에서 총무 역할을 하며 1천200평 비닐하우스 오이 농사로 한해 9천여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이씨 부부는 겉보기엔 평범한 농사꾼이다. 그러나 이씨가 5년 넘게 마을 이장을 하고 있고, 김씨가 금남오이 꽃동산마을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정보화마을인 칠곡 금남오이 꽃동산마을은 이들의 또 다른 삶의 터전. 신축한 마을회관(1층)과 마을정보센터(2층)에서 마을 대소사를 논의하고 마을 행사를 치르며 주민들의 정보화 능력을 기르고 있다. 오이따기 등 농촌체험과 외지인들의 견학을 수용하는 공간도 바로 이곳이다.
이씨는 여기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진행하는 일을 맡고 있다. 남녀 노인들 대상의 컴퓨터와 요가 교실, 한글 공부, 풍물 연습 등이 그것. 대학시절 동아리활동 경력을 십분 활용해 마을 지신밟기 등 풍물놀이에는 부인과 함께 꽹과리나 징을 들고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국문학을 전공한 부인 김씨는 바쁜 농사일 가운데도 문학을 향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대구, 칠곡 등지의 문학교실을 찾아 시와 수필 공부를 하며 문학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다. 지역의 다문화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이주여성들에게 한글을 지도한 것도 그가 자처한 일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칠곡 농촌개선회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바지랑대'의 편집장을 5년 넘게 맡아 농촌사회의 소통과 정보 교류에도 앞장선 적이 있다. 이들 부부는 금남리가 정보화마을로 선정되고 향후 평생 학습마을로 거듭나는 데 산파역을 했고, 더욱 앞서가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씨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농촌이 앞으로는 오히려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오늘의 농촌'노인 문제는 곧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며, 대학에 들어갈 아들과 고교생이 되는 딸을 두고 있는 입장에서 내일의 농촌은 곧 자식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부부는 새로운 농촌공동체를 꿈꾼다. 금남리의 오이작목반처럼 마을마다 나름대로 특화된 작목반을 형성해 놓으면 젊은 시절을 도회지에서 보낸 사람들이 정년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어렵지 않게 농사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자신을 낳은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곧 노후의 고독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며, 농사를 통해 실직과 빈곤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요즘은 농촌마다 요양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질병과 건강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직장에서 정년을 맞는 60세 전후면 농촌에서는 소장파에 속하지요. 경제적인 자립은 물론 다양한 노후생활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처럼 우리나라도 은퇴 농업과 귀농의 활성화로 농촌사회가 재편될 것으로 내다보는 이씨는 이 문제가 고향을 지키는 젊은 농업인들과 대도시에 나가 있는 출향인들이 힘을 모아야 할 숙제라고 했다. 이씨는 "외지인과 외국인 견학이 잦은 이곳에 1박2일이나 2박3일간 머무르며 농촌 봉사와 체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칠곡'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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