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닥터 토크박스] 가족의 힘

갑작스런 외상으로 손을 못 쓰게 되면 신체의 장애 외에도 정신적으로 심한 충격이 남게 된다. 더구나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다 가정 형편상 마흔을 훨씬 넘긴 나이에 산업 현장에 내몰려 장애가 남을 정도의 손상을 입었다면 더욱더 심적인 고통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순히 상처만 치료하지 않고 심리적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마땅할진대 현재 우리 의료 실정은 이런 면에서 약간 인색하다. 그래서 주치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고 가족 역시 심리적 위로를 해 주는 것이 안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필자의 진료실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두 분이 계신다. 두 분 모두 집에서 손자들 재롱 보며 지낼 나이지 싶은데 공장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한 분은 손목 위쪽에서 절단술을 받고 의수를 착용하셨고, 다른 한분은 팔꿈치와 손목 사이에 재접합술을 받고 1년 가까이 재활 치료를 받고 계신다. 그런데 이분들 곁에는 항상 자녀가 함께 있었다. 수원에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엄마 곁을 지키는 딸, 공부를 잠시 접고 항상 엄마와 함께하는 아들이 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여름 두 분 모두 심한 적응 장애 및 우울증 증세를 보여 정신과 치료를 병행했다. 없어진 손,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에 대한 마음의 고통이 원인이었다.

어제는 외래 진료에 마침 두 분이 함께 오셨다. 한 분이 손톱에 네일 아트까지 해서 멋진 그림을 그렸길래 '누구 작품이냐'고 물으니 "딸내미가 해주었어요"하며 웃는다. 다른 한 분은 "차디찬 의수가 싫어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전동 의수 처방을 받고 싶다"고 적극적 치료를 원하였다. 함께 아파하는 가족이 옆에 있었기에 지독하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한결 웃음도 찾으신 듯했다. 따뜻한 딸, 아들은 엄마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었다.

두 분 모두 회복이 잘 되어서 고마운 마음에 절단한 손, 재접합 된 손에 악수를 청했다. 한 분은 싸늘한 의수의 느낌, 한 분은 힘은 없지만 악수가 가능해질 정도로 회복이 되어서 따스함이 느껴져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비록 두 분에게 힘든 삶의 흔적이 그대로 손에 남아버렸지만, 그 손이 아들과 딸이 더욱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쓴약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필자 역시 더욱더 공부하고 연구하여 이러한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제 많이 적응하시고 살아가시는 모습이 너무 대견합니다. 항상 희망 잃지 마시고 즐거워지려 노력하세요."

이 말이 필자의 웃음과 더불어 심리 치료의 전부지만, 항상 옆에서 최선을 다해 줄 가족이 있기에 희망이 보인다.

이영근

053)550-5000 trueyk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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