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합헌 결정이 사형제 존폐 논란을 다시 촉발시키고 있다.
한쪽에선 '치러야할 죗값을 당연히 치러야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쪽에선 '하늘이 준 생명을 인간이 빼앗을 수는 없다'고 강조하는 등 양쪽의 주장이 팽팽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폐지·존치 논쟁이 이처럼 평행선을 달려온 것과 달리 국제 사회에서는 사형 폐지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피해자 가족 중에서도 '심정적 응징·복수'를 넘어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는 인식변화의 흐름이 있고 인도적 측면과 범죄 감소 측면에서도 '절대적 종신형제'가 훨씬 더 효과적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범죄자가 출소 후 나돌아다니거나 재범 가능성을 걱정하는 사형제 존치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감형없는 절대적 종신형제'를 시행하면 범죄 예방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유명무실 대한민국 사형제
"실질적으로 한국은 사형 폐지 국가나 마찬가지입니다. 법제화가 안 됐을 뿐이죠."
대구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사무국장은 "한국 사회의 사형제는 이미 유명무실한 제도"라며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57명의 사형수가 있지만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이 이뤄진 적이 없다.
대구교도소에도 사형수 11명이 복역중이지만 김영삼 정부 시절 마지막 사형 이후 지금까지 사형 집행이 없었다. 이 때문에 국제앰네스티도 3년 전부터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형제가 유명무실해진 데에는 범죄자의 인권뿐 아니라 집행자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 이번 헌재 결정에서 위헌 의견을 낸 목영준 재판관도 "사형이 생명권에 대한 본질적 침해이고 사형을 선고할 법관이나 검사, 집행관의 인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지·고법 판사들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법관이 정말 있겠느냐"며 "사형 선고 전날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사형 판결 땐 다리가 덜덜 떨리기도 한다. 국민적 공분을 산 범죄자도 법정에 서면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했다.
◆국제 사회의 흐름은
외국에서도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들이 증가하고 있다. 유엔 총회는 2007년과 2008년 연이어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유예)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올 2월 현재 전세계 197개국 중 법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는 139개국에 이른다. 매년 평균 3개국씩 사형을 폐지하고 있는 셈. 지난해에만 부룬디, 토고, 미국의 뉴멕시코주가 사형제를 폐지했고 11월에는 러시아의 헌법재판소가 사형집행 중단(모라토리엄)을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자국 의회에 사형제 폐지를 촉구한 바 있다.
사형제를 유지하는 국가들은 사형 집행을 통해 범죄 예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국제연합은 1998~2002년까지 사형제와 살인율의 관계를 조사했지만 상관관계를 밝히는데 실패했고 중국은 사형의 빈도가 가장 높은데도 범죄율이 높은 국가다.
사형제를 폐지했다 부활시킨 미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사형 집행 건수가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몇몇 주 정부는 사형집행을 임시로 유예하는 조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사형제 폐지의 과제는?
국내 상황도 국제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사형제 존폐 논란 목소리는 헌재가 생긴 1988년 이후부터 줄기차게 터져 나왔다. 사형제 합헌성을 묻는 첫 헌법소원 심판청구가 1989년 이뤄졌다. 1995년에는 사형제의 헌법소원 건에 대한 첫 합헌 결정도 나왔다. 다만 사형제가 '제도살인'의 성격이 강해 존치 여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사형제를 폐지할 경우 법조계 및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피해자 가족에 대해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전제돼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동진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가고 있는 현실에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보수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국민 감정이 어떠냐에 따라 사형제 폐지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공감대 형성이 우선 순위이고 우리 사회가 피해자 가족을 더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5일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합헌 결정에 대해 "국민의 생명을 강제로 빼앗는 사형제도에 헌법재판소가 면죄부를 준 것으로 생명과 인권을 외면하고 보수적인 법률적 논리와 정치적 판단으로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종규·이상준·김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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