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창호 벌써 저무는가…세계기전 8번째 준우승

LG배 세계기왕전 준우승…한국 킬러 콩지에에 패배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우승한 콩지에(오른쪽) 9단이 이창호 9단과 복기하며 대국 상황을 되살펴보고 있다.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우승한 콩지에(오른쪽) 9단이 이창호 9단과 복기하며 대국 상황을 되살펴보고 있다.

콩지에(孔杰)가 서울에서 이창호를 잡으며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어 젖혔다. 콩지에 9단은 22일 14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1국에서 242수 만에 백 2집반승을 거둔 데 이어, 24일에도 308수 만에 흑으로 1집반을 남겨 2연승으로 LG배와 2억5천만원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콩지에는 27세로, 1982년 11월 29일 베이징 태생. 1994년 입단, 5단 시절인 2000년 제2회 춘란(春蘭)배에서 조선진 9단, 최명훈 7단에 이어 1회 우승자인 조훈현 9단과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을 꺾으면서 우리에게 그 이름을 알렸는데, 상대한 기사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았다. 콩지에는 그해 전국체육대회 개인전에서 첫우승을 일궜고, 2001년에 2연패를 달성했다. 2003년 중국 신인왕으로 한국의 송태곤 4단에 2연승하며 통합신인왕을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

이후 3년간은 동년배인 후야오위(胡耀宇), 치우쥔(邱峻), 펑치엔 등과 뒤엉키며 존재감이 약화되었고, 생일이 64일 늦은 구리(古力)에게 추월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중국 최대의 기전인 창치배 우승으로 중국랭킹 1위에 올랐고, 2009년 중반부터는 세계대회 5관왕 구리를 극복하며 21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과 14회 삼성화재배를 제패, 2010년 1월 다시 중국랭킹 1위로 복귀했다.

이번 14회 LG배 우승까지 콩지에의 질주는 한국기사 킬러로서의 행진이기도 했다. 21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에서 강동윤, 이창호, 이세돌을 연파했고, 삼성화재배에서는 강동윤, 박영훈을, LG배에서는 이세돌, 강유택, 최철한, 박영훈, 이창호를 이겼다. 현재까지 세계 대회 13연승을 달리고 있으며, 작년에 한국기사에 대해 이세돌(중국갑조리그), 이창호(더블일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열린 삼성화재배 32강전)에 한 차례씩, 두 번밖에 지지 않았다. 박영훈에게는 무려 6승 무패로 압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발전에 대해 시간 사용 기량의 향상에 주목하고 있다. 예전의 콩지에는 포석 단계의 장고는 물론 지나친 시간 사용으로 인해 중반부터 초읽기에 몰려 역전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초반에 집착하지 않고 중반과 끝내기에 공을 들이면서 후반이 더 강한 기사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봉수 9단은 "침착함은 전성기의 이창호와 호선이며, 이제 침착으로 이길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유창혁 9단은 "최근 지는 게 이상하다 말할 정도로 잘나간다. 자신감이 붙었고 안정감이 돋보이는데 그런 면에선 분명 이창호보다 앞선다", 목진석 9단 역시 "정상으로 올라선 후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태세로 바뀌었다"로 평가했다.

콩지에 본인은 "이긴 것은 내가 젊기 때문"이라고 슬쩍 넘어갔지만, 그의 바둑이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쪽으로 진화해 온 것을 감안한다면 전성기의 이창호를 방불케 한다는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다고 평가된다. 실제로 이창호 9단은 이번의 2판 중 어느 대목에서도 이렇다할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또다시 세계대회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이창호 9단. 메이저 세계기전에서만 벌써 8번째다. 세계가 이창호 1인을 뒤쫓던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2006년 1월에 10회 삼성화재배에서 뤄시허(羅洗河) 9단에게 당한 어이없는 역전패부터가 하향세의 시작이었다.

이창호의 패배로 그의 시대의 장려한 낙조를 목격해야 하는 서글픔 외에 한국 바둑은 현존 7개의 세계기전 중 중국 우세(5대2)를 4대3의 백중세로 바꿔놓을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 원인 중 하나는 2년 이상 한국랭킹 1위였던 이세돌 9단이 그 승부의 절정기에서 6개월간 휴직해 버린 것을 꼽을 수 있다.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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