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빵셔틀, 잘못 아니다" 55%…청소년 '폭력 불감증' 심각

#초등학생(4년) A군 등 4명은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잘난 척하고 자기 맘대로 한다'는 이유로 몇달째 '왕따'를 시켰다. 얼마 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진상 조사에 나섰는데도 아이들은 신나게 따돌림 경위를 자세히 설명했다. 전혀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다.

#중학생(3년) B양은 친구들한테서 돈을 빼앗다가 교사에게 들켰다. 엄마가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용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를 배우고 싶은데 집에서 계속 공부하라고 강요해 그랬다"는 B양은 "이게 무슨 폭력이냐"며 반문했다.

청소년 폭력이 줄고 있다는 정부 통계와 달리 교육현장에서 따돌림이나 언어폭력 등 '준폭력'은 더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이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간 전국 초·중·고 64개교 학생 4천73명을 대상으로 벌인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학교폭력 피해율은 9.4%로 2008년(10.5%)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가해율은 12.4%로 전년(8.5%)보다 더 늘었다.

이번 조사에서 학생들의 55%가 '빵셔틀'(힘센 아이가 빵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폭력이 아니다'고 답변하는가 하면 괴롭힘·사이버폭력(각 42%), 성폭력(27.2%), 왕따(16.9%) 등에 대해서도 '학교 폭력인지 모르겠다'고 답해 '폭력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다.

청예단 대구지부 이호숙 지부장은 "지난해 문제가 있는 학생 104명을 상담했는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가해 학생 학부모들도 신체 폭행만 학교 폭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초교생·여학생의 학교폭력 경험 비율이 높고 일상화된 것도 변화상이다. 피해 경험자 62%는 초교때 처음 학교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학생의 경우 2명 이상 가해자에 의해 학교폭력을 당한 비율이 82.7%로 조사돼 남학생(62.9%)보다 더 심했다. 초교 때 처음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비율도 69.3%로 남학생(58.1%)보다 높게 나왔다.

심부름을 시키는 이른바 '셔틀'의 대상은 '빵'에서 숙제, 체육복, 교복, 휴대전화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 급식을 대신 타오게 하거나 심지어 싸움까지 대신시키는 '검투사 셔틀'까지 있다는 것이다.

이호숙 지부장은 "갈수록 난폭화·연소화하고 있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조기 교육을 강화하고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도 교육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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