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한국과 일본―100년의 회고, 100년의 전망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축구경기나 피겨 스케이팅을 보더라도 일본은 늘 한국 앞에서 왜소해진다. 무시와 갈등의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단적인 사례다.

왜 이런 관계가 되었을까. 가까이는 식민지 지배, 멀리는 임진왜란, 고대사 등을 둘러싼 양국의 인식 차이다. 우리는 역사의 기억 속에서 이것을 지우고 싶어한다. 몇 년 전부터 학계에서 일기 시작한 한일병합 무효론이 그것이다. 일본은 그것이 반드시 불법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강변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논쟁이다. 양국 모두 이러한 관계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작년 일본의 정권교체와 함께 다소 긍정적인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역사인식에서 자민당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아시아를 중시하는 외교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일관계도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민당 정권에서 일본은 미국을 따르면 득이 된다는 인식으로 외교와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발전에 전념해 고도성장을 실현했다. 그러나 이는 국가로서의 자율성을 약화시켜 경제적으로도 미국을 추종하게 만들었다는 게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인식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미국의 글로벌화와 시장주의가 일본의 경제와 사회를 파괴했다고 비판하고, 탈미국화를 표방했다. 탈미국화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축으로 한국 및 아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자세로 나타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일본의 변화가 한일관계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과거의 관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청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연금 탈퇴수당으로 99엔을 지급한 것이 이를 상징하고 있다. 일본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아시아중시 정책은 한국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대중국용의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의 동아시아의 역학 관계가 한'중'일에서 중'일로 방점이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중'일 관계가 새롭게 형성되면 아시아에서 한국의 설자리는 좁아지고 일본 외교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더욱 엷어질 것이다.

어떻든, 우리에게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중요하다. 이웃이기 때문이다. 이웃집에 불이 나면 내 집에 불이 옮아 붙을 수 있다. 내 집에 불이 나면 멀리 있는 친구가 아니라 옆집에서 가장 먼저 달려온다. 무시와 갈등의 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해야 할 이유이다.

지금까지 한일 관계를 규정한 것은 현실적 이해(利害)가 아니라, 과거역사에 대한 인식 차이였다. 이해관계는 조정과 타협이 가능하지만 인식의 차이는 엄청난 변화를 필요로 한다. 현실적으로 양국 간 역사 인식의 차이를 메우기는 매우 어렵다.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언론에 등장하는 각종 기사도 이 범주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다. 한일 양국은 이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 이해관계와 과거사를 분리해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역사 인식의 문제는 철저히 사실(史實) 규명을 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은 비 서구지역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였다. 한국은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 중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이다. 이러한 한국의 자신감이야말로 일본과 대등하고 바람직한 관계를 구축하는 토대이다. 한일병합 100년을 기점으로 앞으로의 한일관계 100년을 설계할 한국의 자신감을 우리 스스로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거대한 중국의 등장으로 지금 세계와 우리 주변에는 종래에 볼 수 없었던 큰 변화의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동시에 한일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숙고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사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의 100년을 전망할 혜안을 가져야 한다.

이성환(계명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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