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책속 심리] 교수와 광인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세종서적

진료실에 들어선 한 중년 부인이 "정신과 의사는 미친 사람만 진료하다보면 자기도 같이 미친다고 하던데요" 라면서 나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처음 듣는 말도 아니지만, 맥이 빠진다. 부인처럼 아직도 정신과를 '달이 두 개 떠 있는 루나틱(lunatic)한' 세상으로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상에는 정상인과 미친 사람, 두 부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이 책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편찬에 평생을 바친 책임 편집자 머리 교수와 자원봉사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마이너 사이에 얽힌 기묘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마이너는 17년간이나 서신을 통해 교수에게 주옥과 같은 예문을 보내주고, 가장 큰 기여를 하였지만, 그의 존재는 미스터리로 남아 아무도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마이너는 예일 의대를 졸업한 의사였다. 독서와 수채화를 즐기고 플루트를 연주하던 유순한 성품의 마이너가 남북전쟁의 군의관으로 참전하면서 불우한 인생이 시작된다. 잔혹한 전쟁터에서 군의관은 불에 달군 쇳덩이로 탈영병의 얼굴에 낙인찍는 형벌을 수행해야 했다. 심약했던 마이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 뒤 마이너는 정신병이 발병한다. 누군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 음식에 독약을 탔다, 밤마다 위층에서 소음으로 자신을 박해한다는 피해망상의 세계에서 도망자처럼 숨어 살았다. 결국 마이너는 출근길에 나선 한 노동자를 자기를 죽이러온 비밀첩자로 오인해 권총으로 살해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그는 정신병 수용소에서 평생을 보냈다. 좁고 외로운 수용소에서 사전 편찬을 위한 인용문을 작성하는 지적인 자극만이 망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이었다.

망상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망상은 잘못 지각한 외부 정보를 근거로, 잘못된 추론을 해나가면서 생겨난다. 아내의 휴대전화에 우연히 잘못 들어온 문자를 본 남편은 아내의 정조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아내가 운동하다가 생긴 무릎의 멍자국도 불륜의 증거로 여긴다. 아내가 다른 남자를 칭찬하는 사소한 말은 불륜을 시인하는 증거로 받아들여 결국 의처증(망상장애, 질투형)으로 발전한다. 자신의 잘못된 인지적 고리를 확인시켜주는 정보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점차 잘못된 신념을 사실로 믿게 된다.

과학적 사고와 망상적 사고는 유사점이 있어서, 새로운 과학적인 주장들도 처음에는 망상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둘 다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득으로는 단념시킬 수가 없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화부터 내고,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어도 자신의 가설(망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과학적 가설은 망상에 비하여 더 그럴 듯하고, 개인의 가치에만 집착하지 않고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정신과 의사는 망상이 형성되는 과정인 자료수집, 지각, 추론, 신념 형성 중 어느 단계에 문제가 있는지를 탐색하여 나침반처럼 방향을 알려준다. 갑작스런 불안감이 엄습할 때, 삶의 한 가운데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 때, 누구에게나 토킹 닥터가 필요한 것이다.

김성미<마음과마음 정신과의원 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