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탄 100주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 많습니다. 당시 식민지 조선과 조선인의 상황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일본인들은 어떠했을까요? 최근 도요타자동차 사태로 인해 미국 내 일본인들의 위상이 참으로 대단해졌다는 것을 실감합니다만 태평양전쟁 무렵의 일본인들도 그랬을까요? 특히 미국에 살던 일본계 미국인들은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일본 민족이면서 국적은 미국인이었던 일본계 미국인들은 당시 두 개의 조국 일본과 미국 간의 전쟁 상황에서 어떤 정체성 인식을 가졌을까요?
일본이 주장한 것처럼 태평양전쟁이 '백인으로부터 자유를 찾으려는 황인종의 성전'이었다면 미군에 참여한 이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전 황인종의 배신자가 될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고 '군국주의 일본에 대항'한 전사였다면 그들은 민주주의 종주국 미국을 지킨 일등공신일 것입니다. 이 복잡 난해한 역사의 매듭을 풀려는 시도가 곽준혁 교수를 비롯한 젊은 학자들에 의해 시도되었습니다. 『근대성의 역설: 한국학과 일본학의 경계를 넘어』(후마니타스, 2009)가 그 결과물입니다. 연구서는 민족주의적 역사 기술이 지니는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비판하면서 식민 통치와 그 유산 속에 존재하는 인종주의, 지배와 폭력, 계급 착취, 가부장제 등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다수의 역사로 구성되어 있는 근대성을 풀어내려는 시도가 돋보입니다.
내용을 보면 감추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새롭게 조명한 부분이 많습니다. 당시 일본계 미국인의 처지를 기술한 부분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당시 미군에 복무 중인 일본계 미국인 후손들은 약 5천명이었지만 진주만 공격 이후 그들의 군 복무 가능성은 점차 제한을 받게 되었습니다. 1942년에 이르러 미 병무청은 징병 자격이 되는 일본계 미국인들의 등록을 중지하라고 지역 사무실에 지시하게 되고, 전쟁성 역시 일본인은 시민권과 상관없이 징병의 자격이 없다고 공시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계 미국인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게 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당시 미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인식입니다. 전쟁 발발 후 미국 서해안에서 일본인을 퇴거시키기로 결정하기 전날 에 실린 기사입니다. "독사는 알이 어디서 부화되든지 간에 독사일 뿐이다. 일본인 부모가 낳은 일본계 미국인들도 미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으로 자란다." 1942년 5월, 아이다호 주지사의 이야기도 걸작입니다. "일본인들은 쥐처럼 살았고, 쥐처럼 키워졌고, 쥐처럼 행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일본으로 되돌려 보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일본 섬을 가라앉혀야 한다."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 내재하던 일본인은 그야말로 동물의 수준이었습니다.
전쟁을 계기로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사회적 조건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전쟁을 위한 수요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전시동원에 필요한 인력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이 내건 슬로건입니다. "우리 국민이 된 것을 환영한다. 가서 죽어라, 그러면 우리가 너희에게 장수와 쾌적한 생활을 약속하겠다." 둘째는 미국의 전쟁이 인종차별전쟁이 아니라는 명분을 확립해야할 필요성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에서 헤게모니를 확보하려던 미국의 입장에서 황인종 전체를 적으로 삼지 않으려면 미국이 인종차별국가라는 것을 부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계 미국인들을 향한 포용정책을 실시한 것입니다. 1943년 2월, 미국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들의 충성심을 판별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만명의 일본계 미국인 피수용자들을 풀어주고 주류사회로 다시 안착시켰습니다. 1944년 12월에는 서부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던 일본인 추방을 폐지하였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양인 일본계 미국인은 최소한 염소인 일본인과 구별되는 지위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일본계 미국인들은 미개한 동양의 국가, 열등한 황인종, 패전국의 꼬리를 단 채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방황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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