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사
초밥전문점 국수사(대구 수성구 범어4동)는 낮 12시~오후 2시, 오후 5시 30분~밤 10시까지 정해진 시간에만 손님을 받는다. 콧대 높은 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면에는 손님에게 최상의 음식을 대접하려는 철학이 담겨 있다.
국수사는 당일 재료를 준비해 당일에만 사용한다. 신선하지 않은 재료는 곧바로 폐기한다. '하루 종일 영업해서는 좋은 재료를 준비할 수 없다.' 국수사 주인 김유호(53)씨가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줄곧 지켜온 원칙이다.
국수사 초밥은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3, 4 배 비싸다. 고추냉이, 단무지 등 재료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하다 보니 자연히 단가가 올라갔다. 국수사를 찾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기꾸초밥은 1인분(8개) 3만원이다. 하지만 속된 표현으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준비해 둔 재료가 떨어지면 바로 문을 닫는 까닭에 손님이 많을수록 영업 시간은 단축된다. 국수사는 일주일에 절반 정도는 오후 7시면 문을 닫는다. 단골손님도 부지기수다. 손님의 90% 정도가 단골로 분류된다. 1, 2년 단골은 아예 명함을 내밀 형편이 못 된다. 단골 중에는 1990년 김씨가 호텔에서 일할 때부터 김씨의 손맛에 반한 사람들도 있다.
국수사 초밥 맛의 비밀은 신선한 재료와 밥, 숙성된 생선의 절묘한 조화에 있다. 특히 초밥 맛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밥이다. 그래서 김씨는 밥 짓는 일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새벽 5시 매장으로 나와 30분간 쌀을 불린 뒤 밥을 지어 30분간 뜸을 들인다. 이후 김을 완전히 뺀다. 김이 남아 있으면 밥이 질척해지기 때문이다. 그 다음 촛물(초밥 소스)을 섞은 뒤 촛물이 골고루 배어들도록 6시간 이상 숙성시킨다. 김씨가 새벽에 나와 밥을 짓는 이유는 숙성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초밥에 사용되는 쌀은 햅쌀이 아니라 3년 이상 묵은 쌀이다. 수분이 증발하면서 곳곳에 금이 간 묵은 쌀로 밥을 지은 뒤 촛물을 섞으면 잘 스며들어 깊은 맛을 낸다는 것.
손님을 생각하는 철저한 품질 관리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김씨는 많은 일본 음식 가운데 초밥 하나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장인이다. 지금도 공부를 위해 1년에 네번 일본을 찾는다. 청춘을 바쳐 터득한 레시피는 모두 기록해 두었다. 촛물 만드는 비법을 1억원에 사겠다는 제의도 있었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피와 땀이 서린 보물 1호를 돈에 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김씨에게 초밥은 인생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밥으로 인해 시련도 겪었지만 인생의 의미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선친 때부터 일식집을 운영한 까닭에 그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일본 음식 만드는 일을 보고 배우며 자랐다. 일제강점기 어머니가 이화여대를 나올 만큼 엘리트 집안에서 자랐지만 공부 대신 음식 만드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를 마친 뒤 김씨는 서울과 부산을 다니며 유명 일본 음식점에서 요리를 배웠다.
하루 한끼로 끼니를 때운 고생스러운 시절도 보낸 김씨는 공개 선발을 통해 1983년 경주 도쿄호텔에 취직하면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88서울올림픽 때는 귀빈에게 대접할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 그는 서울, 대구, 일본의 유명 호텔을 거쳐 1993년 지산동에 '초밥1번지'라는 간판을 처음으로 내걸었다. 호황을 누렸으나 IMF로 장사를 접어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2000년 황금네거리 인근에 '국수사'라는 이름으로 재기한 뒤 2007년 지금의 위치로 국수사를 이전했다. 국수사의 수사는 일본어 '기꾸'(KIKU)로 초밥을 의미한다. 초밥전문점에 대한 자긍심이 담긴 상호다.
김씨는 그동안 차를 사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못 산 것이 아니라 안 샀다. "제가 가진 돈은 손님들이 주신 것입니다. 돈 좀 벌었나 보네 이런 소리 들으면 안 되니까 차 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이 쉰을 훌쩍 넘긴 지난해 겨우 차 한대를 장만했다. 음식점 밖의 생활에서도 손님들을 생각할 만큼 프로정신으로 무장돼 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먹는 방법만 보면 음식에 대한 손님들의 조예를 알 수 있다는 것. "음식을 제대로 먹을 줄 아는 사람이 오면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긴장합니다. 자연히 접대에도 신경을 더 쓰게 됩니다. 손님도 공부를 해야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습니다." 자존심을 담아 초밥을 만들고 있는 초밥왕이 던지는 메시지였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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