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통+약간의 솜씨로 삶이 풍성…美는 덤이죠

'대구의 타샤 튜더' 안용희 주부가 실천하는 자연주의 삶

타샤 튜더를 아는지.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 타샤 튜더는 평생 자연주의를 실천하며 20세기 속에서 19세기의 삶을 산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말년에 버몬트주 산골에서 홀로 자급자족하며 '자연주의적 삶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2008년 향년 9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손수 옷을 지어 입고 요리를 하고 정원을 가꾸는 평범한 그의 삶은 21세기 여성들에게 큰 울림과 감명을 주었다.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는 '한국의 타샤 튜더'로 알려지면서 그의 살림법 '자연으로 상 차리고 살림하고, 효재처럼'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현대인들이 첨단의 생활을 하면서도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대구에도 숨은 '타샤 튜더'들이 많다. 자연을 존중하고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대구의 타샤 튜더, 안용희씨를 만나본다.

안용희(56'경산시 와촌면 음양리)씨를 보면 수백년 전, 조선의 여인을 만나는 듯한 착시 현상을 느낀다. 평범한 주부인 그는 손수 지어 입은 단아한 한복을 입고 새하얀 광목으로 만든 주머니에 직접 만든 과자를 넣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그녀가 만든 각종 주머니와 다포에는 색색깔 고운 수가 놓여져 있다.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손수 장만하는 것은 기본. 이불과 커튼은 전통 조각보와 누비로 만든다.

"옷 만들기 시작한 것은 4, 5년쯤 됐어요. 달빛처럼 은은한 흰색 천에 천연염색으로 색을 올리고 옷을 지으면, 그 기쁨이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그녀의 사계절은 늘 바쁘다. 봄이면 지리산에서 찻잎을 따와 덖고 말려 녹차와 발효차를 만든다. 여름이면 다양한 과일 식초와 발효주를 만들고 햇살 좋은 날엔 천연염색하느라 바쁘다. 가을이면 겨울 저장음식을 준비하고 햇살이 좋으니 꽃도 말리고 천연염색도 마음껏 한다. 겨울은 따뜻하게 차를 마시며 옷을 누비기에 딱 좋은 계절이란다. 사계절 모두가 안씨에게 축복인 셈이다.

안씨의 집을 둘러보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변 대부분의 것들은 그가 직접 만든 것들이니 말이다. 커튼과 이불, 다포, 각종 주머니, 버선, 옷, 도자기, 양갱, 다식 등 끝이 없다. 지난해부터 깨끗한 광목이나 무명에 수를 놓기 시작했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주머니들은 올망졸망 쓰임새를 기다린다. 그의 손을 거쳐간 것들은 꼭 그 자신을 닮았다. 직접 만든 소품들을 쓰다듬으며 '어휴, 귀여워'를 연발한다.

그 중 가장 아끼는 것은 조선시대 중기 스타일의 두루마기. 홍화와 먹으로 천연염색해 만든 두루마기를 한땀 한땀 손으로 누볐다. 6개월 이상 걸린 이 옷은 입기가 아까울 정도.

그는 천연재료로 만든 한복 예찬론자다. "천연재료에다 천연염색한 옷을 입으면 마치 나와 한 몸이 된 것 같아요. 입은 것 같지도 않죠.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음식도, 옷 만들기도 혼자 관심을 가지며 터득해낸 결과다. "저도 내 속에 이런 것들이 있는지 몰랐어요. 하면 할수록 손맛 가득한 우리 전통이 좋아지네요."

한번 관심을 가지면 끝을 보는 성품이 있어, 10년 전 우리 차 공부를 시작한 후 이젠 농정차회를 이끌고 있을 만큼 수준을 높였다. 최근 시작한 커피 공부에선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고, 우리 소리도 즐겨 귀 명창 수준이다.

그는 옷을 만들 때 기본에 충실하되 약간의 변형으로 디자인에 포인트를 준다. 그가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멋스럽다'고 칭찬 일색이다. 대신 한복의 경우 최대한 전통에 기초한다. 직접 만든 옷을 입고 나가면 고가의 제품이 아닌가 하는 눈초리를 받는 게 사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광목 몇 천원, 염색 재료 몇 천원이면 이런 옷은 누구나 만들 수 있어요. 절대 사치스러운 게 아니에요."

안씨는 자신의 소박한 재주를 나누고 싶어한다. 우리 전통의 깊이, 손수 만드는 것에 대한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지인들에겐 수시로 무화과를 넣은 양갱이며 작은 주머니, 전통 팔토시 등을 선물한다. 겨울을 앞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던 팔토시는 조선 여인네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외출할 때 끼면 보온 효과가 그만이다.

"이번 겨울엔 주머니를 만들며 행복했어요." 그의 서랍에는 설 명절에 만든 봉투와 주머니가 수북하다. "세뱃돈이나 용돈을 봉투에 넣어드리는 것보다 색이 고운 주머니에 드리면 정성이 가득하죠. 똑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받는 사람들이 훨씬 기뻐하세요."

일본 손님들에겐 직접 수놓은 다포, 손수 염색한 머플러를 선물한다. 그러면 그네들은 너무나 좋아한다. 한국의 평범한 주부의 솜씨이지만 그 속에 조선의 멋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재주를 원하는 사람에게 얼마든지 가르쳐줄 생각이다. 전통에 대해 관심 있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마음이 열려있다.

"약간의 염색에다 약간의 생각을 더하면 생활이 아름다워져요. 사람의 손에서 나오는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전통의 아름다움은 덤이지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