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장아찌

풋고추 등 온갖 먹을거리 박은 '보물' 된장단지

나의 전용 된장단지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것은 보물단지나 다름없었다. 속을 뒤져 보면 없는 것이 없었다. 풋고추, 통마늘, 마늘홰기, 콩잎, 미역줄거리, 명태통마리, 말린 무 등등. 양은 많지 않았지만 종류는 다양했다.

그렇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성어처럼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불러온다더니 내 된장단지는 '쉬'(구더기)의 천국으로 변해 여름을 온전하게 넘긴 적이 별로 없었다. 자주 장독대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우리 집은 정월에 장을 담근다. 단지 속의 묵은 된장은 햇것에게 자리를 내주고 다른 단지로 옮겨 간다. 연전까지는 그것 중의 일부를 양도받아 온갖 장아찌를 담가 입맛을 즐겼다. 몇 년 전인가, 백조기 여러 마리를 된장독 속에 묻어 뒀다가 쉬의 천국을 만드는 바람에 단지를 압수당하고 말았다. 된장 철이 될 때마다 마음을 내 보지만 아내의 "또 또" 소리에 주눅이 들고 만다.

##잠결에도 간 하나로 음식 맛 감별

나는 입에 맞는 음식은 많이 먹을 수 있지만 입맛이 당기지 않는 것은 별로 생각이 없다. 칼국수 한 그릇도 맛이 없는 건 반밖에 못 먹을 때도 있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지금도 입에 맞는 음식은 혀가 얼른 알아차린다.

유능한 소믈리에(sommelier'와인감별사)들도 눈 감고 와인의 산지와 제조연도를 알아맞히기가 매우 어렵다는데 나는 잠결에 먹는 음식도 맛있고 없고를 간 하나만 보고도 당장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된장 소믈리에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도 반찬 투정이 심했다. 만날 먹는 된장과 김치, 그리고 푸성귀 무침에 진력이 나서 "해무꼬(반찬의 고향 사투리)가 이것밖에 없나"라고 고함을 지르면 어머니는 "오는 장날 간 갈치를 사 올게"하면서 나를 달랬다. 어머니의 '오는 장날'이나 빚쟁이의 '내일'이나 비슷한 이야기지만 나는 '오는 장날'에 항상 속고만 살아 왔다.

##각종 된장 장아찌는 도시락 반찬으로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자 도시락을 싸 가는 빈도가 잦아졌다. 어머니도 반찬을 해댈 경제적 여유가 없어 된장독 속에 온갖 먹을거리를 박아두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 집에는 큰 된장독 외에 올망졸망한 단지들이 장아찌용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고추, 마늘을 비롯해 콩잎, 팥잎, 마늘홰기 등 나물류와 해조류를 저장하는 단지들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 해를 버텨내지 못했다. 다섯 아이들의 도시락을 일년 내내 감당하기란 여간 힘에 겨운 일이 아니었다. 장아찌가 떨어지고 나면 다시 시큼한 김치와 날된장이 원대 복귀하여 난로 위에서 요란한 냄새를 풍기곤 했다. 그땐 도시락 속에서 익어가는 김치 냄새가 정말 싫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잊지 못할 추억의 내음으로 이렇게 오래 남아 있을 줄이야.

익은 마늘홰기, 임금님 밥상 안부러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만 어릴 적 입맛은 무덤까지 간다. 조상님들은 잔디 이불을 덮고 명절 때마다 자식들이 싸 온 맛난 음식을 누워서 먹고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도 옛날 음식에 집착하고 있다. 된장을 끓일 때도 매운 풋고추 외에는 두부를 넣는 것도 싫어하며 떡국에 계란 푸는 것조차 원치 않는다. 그뿐 아니다. 명절 음식인 부침개는 누가 뭐래도 맨 지렁(조선간장의 사투리)에 찍어 먹어야 하고 간고등어도 밥 위에 쪄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시방 전용 된장단지를 잃어버려 입맛에 맞는 장아찌들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 여름철 밥맛이 없을 땐 보리밥을 찬물에 말아 된장단지 안에서 누렇게 익어 있는 마늘홰기를 꺼내 먹으면 임금님 밥상도 부럽지 않을 텐데. 나는 임금이 아니어서 그런 맛있는 걸 먹지 못하고 그냥 살고 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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