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5월 대구경북을 방문한 자리에서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촛불집회로 몹시 힘들어했던 당시 이 대통령은 동대구역에 내리자마자 '대통령님 힘내세요'라는 플래카드 물결에 묻혔다. 성서5차산업단지 기공식과 고령 방문을 위해 동대구역에 도착한 길이었다. 환영 인파 한명 한명과 긴 시간 악수했다. 그러한 환영은 성서5차산단 기공식 현장과 고령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어졌다.
기분이 좋아진 이 대통령은 "하늘길과 물길을 열어 새로운 낙동강 시대를 열겠다"고 시도민에게 약속했다. 하늘길은 신국제공항, 물길은 낙동강 사업을 염두에 둔 언급이었다.
고령은 이 대통령의 방문이 사실상 역대 대통령의 첫 방문이어서 환대가 남달랐다. 이 대통령도 "참 오기 힘든 곳에 왔다"고 했다. 특히 낙동강 개발 사업과 연계한 가야문화권 개발 계획을 보고받고 이 대통령은 흡족해했다. 유교문화권 불교문화권 등 3대 문화권 사업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난해 12월 2일 대구를 찾은 이 대통령은 처음엔 내키지 않아 했다 한다. 이 대통령을 수행한 이명규 한나라당 의원(대구 북갑)은 "대통령께서 '대구 방문을 꼭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섭섭하다는 뜻이었죠. 하지만 막상 대구에 와선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돌아가시는 길에 무척 흐뭇해하셨던 걸로 압니다"라고 전했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자. 정운찬 총리의 세종시 수정 방침 발표 이후 '블랙홀' '지방 역차별' 논란까지 제기되면서 대구경북의 민심은 최악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였다. 곳곳에 세종시 수정 반대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한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대구경북 지역 지지율이 한 달 만에 무려 10% 포인트가 하락, 40%선에 겨우 턱걸이했다. 첨단의료복합단지, 국가산업단지 지정 등 고향 발전을 위한 노력에 대한 박수는 없고 싸늘하기만 한 반응에 이 대통령이 "대구에 꼭 가야 되냐"고 했을 만하다.
하지만 이날 서문시장에서 '대구 아지매'들이 보여준 뜨거운 환대에 이 대통령의 마음은 봄눈 녹듯 풀렸다. 서문시장은 대통령을 보려는 사람들로 발걸음조차 옮기기 쉽지 않았고, '이명박'을 연호하는 목소리는 메아리가 돼 울려 퍼졌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대선 유세 때보다 더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포항 방문은 이 대통령으로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일일지 모른다. 포항 죽도시장 일대는 인파가 넘쳐 마비되다시피 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저의 눈이 작아서 상대방은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를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상대방이 무슨 생각하는지 안다"고 했다. 고향 발전을 시켜달라는 고향민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됐다.
여전히 오리무중인 세종시 해법을 풀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이 대통령이 언제나 푸근할 수밖에 없는 고향에서 이번에도 '기'(氣)를 받아갈까?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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