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테마가 있는 여행] 봄맞으러 남해로…

등고선처럼 휘어진 가천마을 다랑이 논. 가장 먼저 봄을 맞는 까닭에 다랑이 논에는 수확을 앞둔 것 마냥 훌쩍 자란 마늘이 초록 융단을 이루고 있다.
등고선처럼 휘어진 가천마을 다랑이 논. 가장 먼저 봄을 맞는 까닭에 다랑이 논에는 수확을 앞둔 것 마냥 훌쩍 자란 마늘이 초록 융단을 이루고 있다.
보리암 경내에서 본 바다 풍경. 해무에 가린 다도해 섬들이 운치를 더한다.
보리암 경내에서 본 바다 풍경. 해무에 가린 다도해 섬들이 운치를 더한다.
최근 남해에서 떠오르는 인기 관광지인 바람흔적미술관. 무인으로 운영되며 바람개비가 돌면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최근 남해에서 떠오르는 인기 관광지인 바람흔적미술관. 무인으로 운영되며 바람개비가 돌면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창선도와 남해 사이 지족해협에 있는 죽방렴. 죽방렴은 물살이 빠른 물목에 부채꼴 모양으로 나무 말뚝을 박은 뒤 발을 둘러 고기를 잡는 어업방법이다.
창선도와 남해 사이 지족해협에 있는 죽방렴. 죽방렴은 물살이 빠른 물목에 부채꼴 모양으로 나무 말뚝을 박은 뒤 발을 둘러 고기를 잡는 어업방법이다.

봄이 겨울의 문턱을 넘는 3월이 되면 나무와 풀들은 남으로 고개를 돌린다. 사람들도 남으로 향한다.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봄이 상륙하는 곳 남도. 남도로 떠나는 여행은 봄 맞으러 가는 여행이다. 꼬불꼬불 해안선이 7천500여㎞ 이어진 남해안에서 봄 기운을 만끽하기 좋은 곳은 남해다. 대구에서 승용차로 두시간 남짓 달리면 닿아 따뜻한 햇살 머금은 다도해를 가슴 가득 담아 올 수 있다.

남해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널려 있다. 제대로 구경하려면 최소 1박 2일은 잡아야 한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갯벌·낚시 등 계절마다 다양한 체험관광도 즐길 수 있다. 남해가 보물섬으로 불리는 이유는 직접 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금산

남해에서 가장 먼저 봄이 찾아오는 곳이다. 금산에 올라서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을 한눈에 조망하며 바다를 건너온 봄 향기를 몸으로 만끽할 수 있다. 금산(701m)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이다. 100일 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한 이성계가 영험에 보답하기 위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은 뒤부터 금산으로 불리게 됐다. 정상 바로 밑에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한국의 3대 기도처로 꼽히는 보리암이 있다.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황홀하다. 특히 봄바다는 유난히 예쁘다.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물결이 현기증 날 만큼 아름답다. 김장호씨가 '한국명산기'를 통해 '바다를 이렇게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사찰은 보리암 말고는 없을 것 같다'고 한 말이 실감난다. 유명세를 반영하듯 기자가 찾은 날은 평일(3일)인데도 봄 마중을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보리암 경내를 돌아가면 절벽에 조그마한 3층 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683년(신라 신문왕 3년) 원효대사가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 서면 반원 모양의 상주해수욕장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사이로 하얀 길을 내며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고깃배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갑자기 날씨가 흐려졌다. 봄 신령의 시샘일까. 해무에 가린 다도해 섬들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진다. 그럴수록 운치는 더해졌다.

Tip:보리암 주차장은 두곳이다. 1주차장은 산 아래, 2주차장은 보리암에서 불과 900m 아래에 있다. 2주차장의 경우 주차면적이 10여대에 불과해 수시로 진입이 통제된다. 1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셔틀버스를 타고 2주차장까지 오는 방법이 주로 이용된다. 주차료는 비수기 기준 승용차 2천~4천원, 보리암 문화재 관람료는 1인당 300~1천원, 셔틀버스 요금은 어른 1명 기준 왕복 2천원이다.

◆가천 다랭이마을

마을의 상징인 다랑이 논에는 봄기운이 넘실댄다. 맨 앞에서 봄을 맞는 까닭에 다랑이 논에는 수확을 앞둔 것처럼 훌쩍 자란 마늘이 초록 융단을 이루고 있다. 다랑이 논은 산이나 구릉지 사면에 계단식으로 조성한 농경지를 말한다. 다랭이는 다랑이의 사투리다. 설흘산(481m)에서 바다로 흘러내리는 언덕에 100층 넘게 쌓여 있는 가천마을의 다랑이 논은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밭 갈던 소가 한눈을 팔다 바다로 떨어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파르다.

10㎡(3평)도 되지 않는 것부터 100평이 넘는 것까지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다랑이 논은 무엇보다 구불구불 휘어지는 논둑이 인상적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리에 따라 농경지를 조성한 결과물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다랑이 논이 연출하는 곡선의 미학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수면에 번지는 파문처럼 논둑의 선형이 산에서 바다로 퍼져나가는 모양새다. 다랑이 논에 생활을 맡길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고단한 삶의 터전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낭만적인 한폭의 풍경화다.

50여가구 150여명의 주민들이 사는 마을은 다랑이 논 중간에 들어앉아 있다. 마을이 다랑이 논으로 둘러싸인 형국이다. 마을 길을 조금 돌아 들어가면 '암수바위'가 나온다.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는 한쌍의 바위로 옥동자를 낳게 해준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다. 암수바위 인근 식당에서 막걸리, 파전 등으로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다랭이마을이 관광지로 각광받으면서 모습도 점차 변하고 있다. 지붕은 산뜻하게 개량됐고 마을길도 곱게 포장됐다. 민박집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바람흔적미술관

경남 합천군 황매산 부근에 '바람흔적미술관'을 열었던 설치미술가가 남해군 삼동면 내산리에 세운 동명의 사립미술관으로 최근 남해에서 떠오르는 인기 관광지다. 전시 관람 목적보다 미술관 자체를 보러 오는 여행객이 많다. 무인으로 운영되며 입장료가 없는 게 특징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가 불을 켜고 미술관을 둘러보면 된다. 나올 때 불끄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관료도 없다. 신청만 하면 전시도 열 수 있다. 작품을 구입하려면 전시실에 적혀 있는 작가에게 바로 연락하면 된다.

미술관은 도로를 중심으로 아래쪽은 평면공간, 위쪽은 입체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유리전시관인 입체공간으로 가는 길에는 조각품이 놓여 있다. 깔끔한 외관을 지닌 평면공간은 저수지 옆에 붙어 있다. 주변에는 미술관을 대표하는 설치작품인 양철 바람개비가 도열하듯 서 있다. 저수지를 건너온 봄 바람이 바람개비를 자극하면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전시실 옆에는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휴식공간이 마련돼 있다. 비용은 2천원. 조그마한 통에 자발적으로 넣은 돈은 미술관 운영비로 사용된다. 그릇은 다음 사람을 위해 씻어 놓는 것이 에티켓이다.

Tip: 도로를 따라 200여m 더 들어가면 1·2전시실, 나비온실, 체험학습장, 표본전시실, 나비사육실 등으로 구성된 나비생태공원이 있다.

◆가는 길에 들르면 좋은 곳

구마고속도로~진주·함안 남해고속도로~사천IC에서 내려 삼천포 방향으로 조금만 달리면 섬과 섬을 연결해주는 삼천포대교와 창선대교가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창선도를 지나면 남해다. 창선도와 남해 사이 지족해협에 이르면 죽방렴을 만날 수 있다. 죽방렴은 물살이 빠른 물목에 부채꼴 모양으로 나무 말뚝을 박은 뒤 발을 둘러 고기를 잡는 어업방법이다. 3월 중순부터 11월까지 발을 설치해 고기를 잡는다. 물이 빠진 틈을 이용해 고기를 건져내기 때문에 한달에 보름 정도 밖에 작업을 못한다.

죽방렴에서 금산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이내 독일식 주택이 즐비한 독일마을이 나타난다. 독일마을은 1960년대 조국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위해 독일로 건너간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곳. 이국적인 독일 문화를 느낄 수 있어 일찌감치 남해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현재 29가구의 독일 교포가 생활하고 있으며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위한 민박(http://www.germanvillage.co.kr)을 운영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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