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전원에 봄이 오니

전원에 봄이 오니

성 운

전원(田園)에 봄이 오니 이 몸이 일이 하다

꽃남근 뉘 옮기며 약밭은 언제 갈리

아이야 대 베어오너라 삿갓 먼저 결으리라.

"농촌에 봄이 오니 이 몸이 할 일이 많구나/ 꽃나무는 누가 옮길 것이며 약초를 심은 밭은 또 언제 갈아야 하나/ 아이야! 대나무를 베어오너라 삿갓을 먼저 짜야겠다"로 풀리는 시조다.

성운(成運·1497~1579)의 작품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로 호는 대곡(大谷). 30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다. 그러나 형이 을사사화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속리산에 은거하며 이토정(李土亭) 서화담(徐花潭) 조식(曹植) 등과 교유하며 학문에 힘썼다. 문집으로 '대곡집'(大谷集)이 있다.

농경시대, 봄이 오면 얼마나 할 일이 많아지는가? 밭에 씨를 뿌려야 하고 한 해의 농사 준비를 해야 하니 말이다. 선비가 농촌에 묻혀 살면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정경이 깔끔하게 드러난다. 이와 같은 작품은 농촌 체험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작품이다. 시가 우리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많이 긍정하게 한다.

이 작품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해 본다면,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일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위 작품에 드러난 것만 봐도 꽃나무 옮기기, 약초밭 갈기 등이 있다. 그런데 가장 먼저 삿갓을 만들겠다고 한다. 봄이 되면 비가 잦고 비올 때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삿갓부터 먼저 만드는 것이다. 왜 삿갓부터 먼저 만드는지 이유를 행간에 숨겨 두고 있다. 그래서 맛있는 시다.

이 작품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중장 둘째 구 '약밭은 언제 갈리'에서는 한숨이라도 내쉬고 싶은 분위기다. 그런데 그걸 잠시 멈춰 종장으로 옮겨가 '아이야'라는 돈호법으로 그 한숨을 내뱉도록 한 것 또한 예사로운 기법이 아니다.

그야말로 봄이 오고 있다. 이 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그 여럿 중에서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할까? 꽃나무 한 그루 없고 약초밭 한 뙈기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한량없이 넓기만 '마음 밭'은 누구라도 가졌거늘, 그 '마음 밭'에 무슨 씨를 뿌릴까를 생각한다면 이 봄이 봄 같은 봄 되지 않을까.

문무학·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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