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대한적십자사가 땅 투기를 하다니

대한적십자사가 땅 투기 의혹을 사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해 말 대구적십자 병원 인근 국유지 917㎡를 65억 원에 사들였다. 이 부지는 그동안 대구적십자 병원이 수십 년 동안 무상으로 사용한 곳이다. 대한적십자사는 경영 정상화의 한 방편으로 국유지를 매입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그 시점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해 전국 적십자 병원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대구적십자 병원은 폐원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럼에도 인근 국유지를 사들였다는 것은 대구 병원 폐원과 함께 부지를 늘려 아예 땅 장사를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 인근은 도심일 뿐 아니라 내년 현대백화점 개장과 함께 대구의 중심 상권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욱이 병원 측은 경영난을 이유로 상여금은 차치하고 수당 등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땅 투기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기업은 자산 가치를 올리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라면 땅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정상적으로 회사를 유지하고, 경영한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대한적십자사는 공익 구현을 목적으로 할 뿐 아니라 이미 대구 병원의 폐원까지 결정해 놓고서도 땅을 사들였다는 것은 몸집을 부풀려 팔아 이익을 낸 뒤 대구를 떠나겠다는 의도다. 이는 여느 부동산 투기범보다 더 나쁜 것으로 도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다.

지난해 대구적십자 병원의 폐원 방침 내정 이후 병원 노동조합을 비롯해 시민단체까지 나서 반대했다. 단순히 경영 적자로 존폐를 결정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병원과 달리 적십자 병원은 의료 취약 계층이 큰 부담 없이 병원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이는 내원 환자의 60% 이상이 의료 급여 수급자라는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들을 저버리는 것은 스스로 의무를 저버리는 것과 같다.

하지만 대구적십자 병원의 폐원은 이미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폐원은 없다던 유종하 대한적십자 총재의 말은 공수표가 됐고, 지난달에는 마지막으로 자리를 지켰던 2명의 의사마저 병원을 떠났다. 아예 병원 기능을 잃어버린 셈이다. 여기에다 땅 투기 의혹까지 불거졌다. 가뜩이나 나쁜 여론에 불을 지른 꼴이다. 앞으로 지역민들의 더욱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게 뻔하다. 대한적십자사는 대구에서 적십자비 납부 거부 운동이 일어나더라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아무런 명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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