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장 아름다운 것은 '수성'도 '도전'도 아닌 '노력'

1인자와 2인자의 역학관계

'내 눈물(김연아)과 네 눈물(아사다 마오)의 의미, 확연히 다르다.'

밴쿠버올림픽 피겨 경기장을 적신 두 눈물의 화학적 성분은 차이가 없다. 하지만 김연아의 눈물에는 정상을 지켰다는 기쁨과 안도가 담긴 반면 아사다의 눈물에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국 마지막 벽을 넘지 못했다는 2인자의 안타까움과 좌절감이 녹아 있다. 김연아의 눈물이 1인자가 감내해야 할 압박감을 이겨낸 데 대한 보상이라면, 아사다의 눈물은 2인자가 끝내 떨치기 힘든 승부에 대한 집착이 부른 숙명이다. 귀국 후 인터뷰도 갈렸다. 김연아는 "이달 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부담 없는 경기를 펼치고 싶다"며 자기 극복의 각오를 밝힌 데 비해 아사다는 "김연아가 은퇴하더라도 그가 세운 세계기록은 깰 것"이라며 도전 의지를 불태웠다.

1인자와 2인자의 차이는 그만큼 극명하다. 비단 스포츠에서만이 아니다. 서열과 순위가 있는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에, 인간사회의 모든 분야에 통용된다.

최고의 파워게임으로 꼽히는 정치권력에서는 1인자와 2인자의 차이를 가장 잘 볼 수 있다. 2007년 8년 집권이 유력했던 한나라당 내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 어김없이 1인자와 2인자가 가려졌다. 1위를 한 이명박 후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지만 2위에 그친 박근혜 후보에게는 권력의 분점도 넉넉지 않았다. 이후 도전과 응전의 관계도 그 차이만큼 첨예하다. 박 후보는 경선 후 "저 박근혜는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라고 선언했지만 이는 경선 결과에 대한 인정일 뿐 1인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결코 아래에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이 대통령도 필요에 따라 박 전 대표를 활용하고 포용했지만 2인자의 도전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세종시 문제를 두고 친이-친박 간 벌어지는 갈등 구도는 그 단면일 뿐이다.

'Winner takes all!' 세상은 1인자가 모든 것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인자에게도 1인자가 갖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 둘 사이의 관계 속을 들여다보자.

◆2인자가 맘 편한 세상, '즐길 구석 있다'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경북 김천)은 고(故) 이의근 전 경상북도지사와 김관용 현 지사의 그림자 역할을 하며 수행하던 경북도 정무부지사 시절이 한편 그립기도 하다. 그는 도지사의 원활한 도정활동을 돕기 위해 전방위로 활약하며 최고의 2인자라는 평을 들었다. 이 의원은 "1인자와의 역학관계에서 역할을 잘 찾고 2인자로서 실속을 찾는다면 그보다 더 마음 편하고 좋은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고(故) 황대현 전 달서구청장 시절 2인자인 부구청장 자리에 오래 있었던 곽대훈 현 달서구청장은 지금은 1인자가 됐다. 그는 "2인자일 때는 스스로를 관리하고 뒤돌아볼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눈코 뜰 새가 없다"며 "1인자 자리에 자유보다 책임이나 의무가 더 많이 주어지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는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1만m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나라 이승훈 선수를 '훌륭한 1인자'로 꼽았다. 1등을 하고도 코치의 실수로 코스를 잘못 돌아 실격당한 네덜란드 스벤 크라머 선수는 '위대한 2인자'라고 칭했다. 크라머는 실격으로 1인자 자리를 박탈당한 뒤, 절망 속에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다음날 훈련장에 나타나 "코치와 함께해온 지난 몇년은 너무 좋았다"고 말해 1인자 복귀를 다음으로 미루는 관대함을 보여줬다.

방송에서 예능 2인자들은 1인자의 범주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묘한 역학관계를 유지하며 살아남는 법을 설파하고 있다. 예능 2인자의 대표주자 박명수를 비롯해 김구라·윤종신·신정환 등은 1인자가 되기엔 약하지만, 개성과 조화의 적절한 화음으로 1인자 못지않은 각광을 받고 있는 2인자 시대의 주인공들. 한때 강호동·유재석·신동엽 등과 함께 1인자였으나 지금은 위치가 어정쩡해진 김제동은 1인자와 2인자 사이를 오가면서도 팬들의 사랑을 잃지 않고 있다.

◆2인자가 강력할 때 1인자는 더 빛난다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와 동시대에 태어난 비운의 천재.'

밴쿠버 올림픽 피겨 경기가 끝난 후 세계 언론과 네티즌들은 아사다를 위로하며 이같이 표현했다. 김연아가 모차르트라면 아사다는 살리에르다. 살리에르의 어쩔 수 없는 패배감이 모차르트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듯, 일본의 피겨 천재 아사다의 좌절은 세계 피겨 여왕으로 등극한 김연아를 더 눈부시게 만들었다.

혁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애플(Apple)사의 간판 스타는 스티브 잡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에 못지않게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팀 쿡의 역할에 주목한다. 애플 신화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팀 쿡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 없이는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도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점에 대해 이견이 없다. 우뇌의 잡스와 좌뇌의 쿡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결과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이 성공적 2인자로 꼭 거론하는 인물이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을 1인자로 받든 저우언라이(周恩來)다.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저우는 자신에게 없는 카리스마를 마오에게서 발견한 후 자청해서 그를 지도자로 추대했다. 저우는 늘 마오의 반걸음 뒤에서 '영원한 2인자'의 길을 걸었다. 역사가들은 "마오의 시대에 실제로 중국을 이끈 두뇌는 저우언라이였다"고 평한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중국 혁명은 결코 불붙지 않았겠지만 저우언라이가 없었다면 그 불길은 다 타서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이와 반대 사례는 대한민국 현 권력에서 진행 중이다. 정권 창출 후 1인자는 2인자가 필요 없다는 듯 독자적으로 모든 권력을 행사해왔고, 2인자는 사사건건 1인자와 대립하며 평행선을 달려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결코 '빛나는 1인자'일 수 없고, 박근혜 전 대표 역시 '아름다운 2인자'이기 힘들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심리상담 교육업체인 카운피아 전종국 원장은 "1인자는 수성(守城)을 위한 노력을, 2인자는 도전을 위한 노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서로가 있어 경쟁이 더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라며 "수성이나 도전이라는 단어보다 노력이라는 단어에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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