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기 없는 절밥'으로 폄하되기 일쑤였던 사찰음식이 웰빙바람을 타고 새롭게 주목받는 건강음식이 된지 오래다. 사찰음식이 산에서 내려오면서 전문식당마다 손님들로 북적대고 직접 조리법을 배워 가정식에 활용하려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자연친화적인 식생활의 결정판이자 가장 한국적인 음식으로 불리는 이 천연음식은 이제 특정 종교의 음식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가까이 하고 싶어 하는 건강식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과식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을 자극하는 스피드 사회에서 벗어나 간결함과 소박함, 정갈하면서도 담백함이 담긴 사찰 음식. 최근 미국의 한 유력 언론은 이 슬로푸드를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하는 음식'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웰빙바람 타고 대중 속으로
사찰음식의 매력은 소박하지만 먼저 기본에 충실하다는 데 있다. 기본은 바로 자연.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온 재료를 간결한 조리과정으로 음식을 만들어 밥상에 올린 게 바로 사찰음식이다. 실뿌리 하나까지 자연 그대로의 것을 별다른 가공 없이 쓰고, 좋은 색을 내기 위해 별도의 기교를 부리지 않는 게 원칙이다. 독초가 아니라면 어떤 나물이든 다 음식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자연과 조화를 이룬 음식은 신체에 필요한 만큼의 적절한 영양분을 함유해 몸에 좋고, 비싼 재료가 아니니 탐욕을 떨치게 해 마음에도 좋은 음식이란 것이다.
정갈함에 반한 사찰음식 마니아, 담백하기 그지없는 조리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사찰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속속 마련되고 있다. 고령군 쌍림면 용리에 있는 반룡사도 매월 첫째, 넷째 토요일에 사찰음식 강좌를 열고, 사찰음식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반룡사에서 표고버섯 죽순밥과 우엉잡채, 우엉들깨탕 등 다양한 사찰음식을 만들고 맛을 본 박복경(47·여·대구시 지산동)씨는 "사찰 음식은 조리 시간이 짧고 영양 파괴도 적어 바쁜 현대인들에게 딱 맞는 음식인 것 같다"며 "가족 건강을 위해 사찰음식을 응용해 식탁을 꾸며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구시티투어에 참가해 고령 반룡사를 찾은 김민영(11)양도 "고기를 좋아해 채소는 잘 먹지 않았는데 채소 위주의 사찰음식도 먹어보니 괜찮은 것 같다"며 숟가락질에 바빴다.
◆지역마다 절마다 각양각색
옛말에 고개 하나만 넘어도 절밥의 맛이 다르다고 할 정도로 사찰마다 음식이 다르다. 요즘은 옛날만큼 맛 차이는 크지 않지만 지역별 특색은 아직 남아 있다.
김장을 할 때 경상도 지역의 사찰에서는 보리밥을 넣어 담근다. 서울·경기 지역은 찹쌀풀의 농도가 옅고, 남도 쪽은 걸쭉하다. 김치 종류도 지역·사찰별로 특색이 있다. 경상도에서는 늙은 호박죽과 보리밥을 이용한 콩잎김치와 우엉김치, 깻잎김치를 많이 담그고 경기·충청 지역은 파와 마늘 대신 주로 잣을 이용해 백김치, 보쌈김치, 깍두기 등을 담근다. 특히 충청 지역에서는 늙은 호박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전라도에서는 들깨죽을 이용한 고들빼기 김치, 갓김치, 죽순김치 등을 담근다. 지역 특산물을 사용하니 당연히 음식 맛도 성격도 차이가 난다.
경상북도 내에도 의성 고운사와 대구 동화사, 안동 봉정사, 영주 부석사 등 사찰마다 버섯과 채소를 이용한 독특한 음식이 전통으로 이어져 오면서 저마다 오묘한 맛을 자랑할 정도로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간결함과 소박함, 담백함이 담긴 음식
일반적으로 사찰음식은 육미(六味)와 삼덕(三德)의 조화를 우선으로 한다. 육미는 신맛·쓴맛·단맛·짠맛·매운맛에 부드러움을 더한 것이고, 삼덕은 청정(淸淨·깨끗함)·여법(如法·조리 순서를 지킴)·유연(柔軟·맛의 조화)을 뜻한다. 육미의 핵심은 오신채(五辛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마늘과 파, 달래, 부추, 흥거(무릇) 등 산성식품을 일컫는 오신채는 '몸에서 냄새가 나고, 성내고 탐내고 어리석게 만드는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에 사찰음식에서는 금기시한다. 한마디로 몸속에 탁한 기운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시중에 문을 연 사찰음식점에서는 일반인의 입맛을 배려해 오신채도 써서 조리하는 곳이 많다.
사찰음식은 자연 그대로의 맛을 중시한다. 봄에는 나물 위주로 생채를 만들어 먹고, 여름에는 채소를 살짝 데친 숙채, 가을과 겨울엔 말린 나물과 같은 저장식품을 주로 사용한다. 자극적인 양념은 쓰지 않는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인공조미료 대신 다시마와 버섯, 들깨, 콩가루로 만든 천연조미료를 사용한다.
사찰음식은 식재료 각각의 궁합도 철저히 따진다. 다소 투박할 수 있는 맛을 보완하기 위해 짭짜름한 장아찌를 함께 내놓고 쑥, 연근이나 당근, 감자 등으로 모듬전을 만들 때 고루 양분이 가도록 색깔을 맞추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대중화·산업화 위해서는 상품화·계량화해야
사찰음식은 웰빙 이미지를 주는 전통 토속 음식이라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지역과 사찰에 따라 다르고, 조리법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재료와 양이 계량화되지 않았다는 점. 웰빙식품으로 꼽히는 사찰 음식이 대중화·산업화를 하기 위해서는 절마다 대표하는 식품을 찾아내 상품화하고 조리법과 음식 명칭을 표준화, 계량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사찰 음식의 대표 메뉴를 개발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며, 조리법과 식재료의 표준화, 계량화를 통해 세계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현주(50) 반룡사 사찰음식연구소장은 "사찰 음식 강좌를 개설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가를 육성할 필요가 있으며 사찰음식 경연대회 개최, 세계음식박람회 참가 등의 방식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했다. 배 소장은 "절 음식의 대중화와 산업화는 오래 두고 고민해야 할 숙제" 라면서 "오신채의 특성을 통해 접점을 찾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사찰음식 전문가는 "스님들의 수행을 위해 피하는 음식을 일반인들까지 못 먹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사찰음식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합일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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