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대통령의 충고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대구'경북 사람들)에게 충고를 던지고 갔다.

'내 편 네 편 가르는 분지(盆地)에 갇힌 사고(思考)를 버리고, 머릿속에서는 정치적 계산도 버리고, 서로 힘을 합쳐 내 지역을 발전시켜 보자는 합심된 노력과 용기로 도전하면 도와줄 준비가 돼 있다'는 충고였다.

따갑지만 어느 한 군데 토 달 데 없이 맞는 말이니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백성에게 하는 충고는 상처에 꿀을 바르듯 따갑지만 부드럽고 위로하듯 해야 한다'는 고전(古典)의 격언대로, 귀에 거슬리지 않는 듯하면서 그러나 아픈 구석은 정확히 찔렀다.

동네 안에 갇혀 살며 네 편 내 편 타령이나 한다는 이번 대통령의 비판과 충고는, 부끄럽게도 KTX 타고 1시간 40분만 동네 밖으로 나가 보면 어느 지방을 가든 귀 따갑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대통령이 업무 보고 받으러 온 자리에서 꺼내 놓을 만큼 지역 밖에서는 이미 파다하게 번져 있는 비판들이다. 그런 차에, 남도 아니고 지역이 배출한 대통령 입에서 나온 충고다 보니 더더욱 따갑게 들어야 하게 됐다.

이제 우리들은 타 지역 사람들이 입을 모아 '대구'경북 사람 문제'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대통령까지 나서서 '고쳐라'고 일침을 준 충고를 놓고 경청할 것인지 고깝다고 외면할 것인지를 고심할 필요가 있다.

'불행을 당하고 있는(쇠잔해 가는) 도시는 바깥의 충고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도, 또 자칫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기 쉬운 중요한 시점에도, 남의 충고를 듣는 고통을 참아내는 힘이 없다'(플루타크 영웅전)는 말이 있다.

지금 대구'경북은 쇠락의 위기에 놓여 있다. 살아날 방법과, 도움과 충고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쓴소리 듣는 고통을 참아낼 힘을 가지지 않으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을 지나 나락의 길로 떨어질 수 있다.

이번 정권이 결정적인 소생의 기회요 부흥의 시기다. 때맞춰 찾아온 대통령은 충고를 참고 듣는 힘을 가진다면 힘을 보태 주겠다고까지 했다. 지역의 살길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바깥 충고를 참고 들어야 한다. 정치적인 호'불호(好'不好)에만 빠져 '불행한 도시'로 가는 길을 계속 걸어가서는 안 된다. 충고 끝에 약속한 R&D 특구 지원은 연간 600억 원의 국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큰 보따리다. 우리의 숙원 사업인 영남권 신공항도 우리가 하는 걸 봐가며 도와줄지 말지 생각하겠다는 뉘앙스를 던졌다. 국민이 낸 세금(예산)을 권력자의 기분에 따라 떡 주듯 나눠 준다면 나라 망할 일이지만 한 금고 속에 든 국고를 이쪽저쪽(지자체)에서 엇비슷한 수준의 프로젝트를 내걸며 서로 많이 달라 손 내밀 땐 이왕이면 충고 잘 따르고 덜 미운 쪽으로 팔이 굽는 건 당연지사다.

예산 따기 경쟁도 일종의 대정부 비즈니스다. 행차 길에 '이명박!'을 외치고 박수 치며 반겨서 수천억 원의 지역 개발 예산을 보장받은 것도 그런 상호 존중을 바탕에 둔 비즈니스다. 대정부 비즈니스는 시장'지사 혼자서 다 해낼 수는 없다. 500만 시도민이 다 같이 세일즈맨이 돼야 하고 로비스트가 돼야 한다.

과거 우리 지역은 힘 보태고 도와줄 사람한테 욕설이나 하고 화형식까지 한 적이 없지 않았다. 욱하는 기질, 못 먹어도 고(GO)! 하는 오기, 서로 흠집 내고 끌어내리는 풍토는 과거 영남선비정신이 살아 있었던 시대엔 없었던 풍토다. 대통령은 그것을 충고했고 고치면 도와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 말은 계속 그 정신머리, 그 풍토 못 고치면 딴 동네 도와주기도 바쁘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성경(구약 잠언)에는 이렇게 충고한다. '미련한 자는 자기 길만이 바르다고 여기지만(저 잘난 것만 알지만) 지혜로운 이는 남의 충고에 귀 기울일 줄 안다.'

우리 모두 나 잘난 독존(獨尊)에서 벗어나 남의 충고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로 변해 보자. 이 대통령의 충고는 썼지만 약(藥)이었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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