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땅에 거닐어볼 만한 길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길을 떠날 때면 늘 설렘이 앞서건만 이번 예천 길은 그렇지 못했다. 고생해서 가봐야 뻔한 길. 새삼스레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걱정스러웠다. 오늘 가는 길은 바로 예천 회룡포. 워낙 유명세를 탄 곳이다 보니 지레 실망부터 앞섰다. 드라마 '가을동화'로 한번 알려졌고, 예능 프로그램 '1박2일' 덕분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곳이 돼 버렸다. 하지만 회룡포를 굽어보는 비룡산 자락을 오르내리며 '아뿔싸' 후회가 밀려왔다. 회룡포를 감싸안고 돌아앉은 비룡산을 거닐며 새삼 깨달았다. '길은 걸어봐야 제맛을 알게 된다.' 골골이 묻혀있는 옛 이야기가 군침 도는 음식마냥 솔솔 피어난다.
지난달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회룡포를 찾아갔다. 예천으로 접어들면 도로 곳곳에 '회룡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용궁면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비룡산을 둘러보는 길은 크게 두 갈래. 용궁면에서 회룡교를 건너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회룡마을을 지나 주차장에, 오른쪽은 장안사에 닿는 길이다. 대부분 장안사 쪽을 택한다. 비룡산을 아낌없이 보려면 바로 장안사로 가지 말고, 회룡에서 장안사로 올라 회룡대에 걸터앉아 굽어치는 내성천과 회룡포를 바라본 뒤 봉수대와 원산성, 삼강앞봉, 의자봉, 적석봉, 사림봉까지 능선을 내닫고 사림재를 통해 용포마을로 내려와서는 내성천을 건너 회룡포 마을을 지나 다시 출발점인 회룡마을로 돌아와야 한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면 4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회룡포가 다시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의 등산 동호회가 앞다퉈 이곳을 찾았다. 가는 구간 곳곳에 산악회 리본이 매달려있는데, 얼핏 봐도 10여개는 훨씬 넘는다. 관광 삼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안사로 오른 뒤 회룡대만 구경하고 돌아선다. 하지만 그래서는 참맛을 알 수 없다. 그저 남들 디딘 걸음에 한 걸음 보탤 뿐이다.
잠시 땅 이름 이야기를 해보자. 비룡산과 회룡포는 워낙 세인들의 발길을 많이 탄 탓에 그 감흥이 다소 사그라진 느낌이 있지만 원래 이곳은 '상상의 땅'이었다. 뜬금없이 상상이라니. 길 안내를 맡은 예천군 문화관광해설사 박용성씨의 말을 빌어본다. "용이 돌아 승천한다는 회룡과 비룡의 이름뿐 아니라 인근 곳곳의 이름은 지상 낙원을 품고 있습니다. 장안사의 장안(長安)도 원래 불교에서 피안의 세계를 뜻합니다. 비룡산 건너편에 천축산(天竺山)도 그렇습니다. 아울러 용궁의 옛 이름은 신라시대만 해도 축산이었죠." 하기야 이곳의 경치를 보고 지상 낙원을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사람들의 욕심은 이곳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했다. 비룡산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낙동강, 내성천, 금천(錦川)이 합쳐지는 삼강을 굽어볼 수 있는 절벽이 나온다. 깎아지르는 벼랑 위에 삼국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했던 원산성(圓山城)이 나온다. 돌과 흙을 쌓아올린 이 성 주위에는 고분도 많이 흩어져있다. 천혜의 요새와 같은 이 성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을까. 백제 시조인 온조가 남쪽으로 땅을 넓히다가 마한의 마지막 보루였던 이곳 원산성을 차지한 뒤 백제를 세웠다고도 전해지고, 오랜 기간 백제의 땅이었으면서 삼국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렸던 곳이라고 삼국사기는 전하고 있다. 회룡포를 알리는 표지판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얼마나 격전지였던지 지금도 피끝이라는 언덕에는 비가 많이 오면 성 아래 마을에서 아비규환과 원혼의 소리가 들려온다는 전설이 있다.' 장안사가 자리 잡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경덕왕 8년(759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대사가 창건했다. 박용성 문화해설사는 "흔히 장안사하면 금강산을 떠올리는데, 당시 국태민안을 염원하며 금강산뿐 아니라 경남 양산, 나라 가운데 있는 비룡산에 하나씩 모두 3곳에 장안사를 지었다"고 했다.
내성천이 휘돌아드는 회룡포를 굽어보는 회룡대에 올랐다. 이곳을 돌아나간 물줄기는 바로 옆 삼강에서 낙동강과 합쳐진다. 회룡대 난간과 기둥 곳곳에는 낙서가 가득하다. 연인들이 찾아와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남긴 상처다. 처음 예천군에서는 이런 낙서를 모두 지웠지만 하도 많아서 그냥 두기로 했단다. 이곳에서 사랑을 염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가는 물줄기와 회룡포가 태극의 음과 양처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며, 아울러 회룡포 바로 건너편에 야트막이 자리 잡은 산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산봉우리 서너개가 있는데, 그 가운데 산봉우리와 골짜기 모양이 영락없는 '하트'다. 때마침 설 연휴에 내린 폭설 때문에 골짜기에 쌓인 흰 눈이 그대로 남아있어 모양새가 더욱 뚜렷했다. 하트 모양 왼쪽은 불룩 솟은 남성의 상징이고, 오른쪽은 가운데 제법 골이 깊은 여성의 상징이다. 박용성씨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데, 마침 옆에 있던 중년의 등산객들이 "정말이지 그럴싸하다"며 배를 잡고 웃었다.
설날 전에 내린 폭설이 고스란히 산 속에 남아있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간 곳은 얼음판으로 변했고, 그렇지 않은 곳은 신발을 덮을 지경이다. 능선을 조심스레 타고 내려간 뒤 사림재로 내려섰다. 산 위에서 보는 회룡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사림재 아래 용포마을로 들어서자 다 쓰러져가는 집 한 채가 눈에 밟힌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물 건너 산비탈 마을에 터를 잡았으며, 이제는 횅댕그렁하니 빈집만 남게 됐을까. 내성천을 건너서 회룡포 마을로 들어가려면 '뿅뿅다리'를 건너야 한다. 공사장에서 임시 통로를 만들 때 쓰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을 이어붙여 만든 다리다. 이 다리가 생긴 것도 20여년밖에 안 됐다. 그 전에는 젖을 각오를 하고 물을 건너야했다. 그처럼 오지였으니 한때 임시 귀향처로 쓰였을 법하고, 6·25전쟁 당시 피란처였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인적이 없던 이 외진 곳에 사람이 들어온 것은 조선 고종 때. 경북 의성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소나무를 베고 밭을 일구었다고 한다. 한때 이곳이 '의성포'로 불렸던 것도 그 때문이다. '뿅뿅다리'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다. 박용성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10여년 전 한 신문사에서 이곳에 관한 기사를 썼는데, 그때만 해도 이 다리는 아무런 이름이 없었죠. 기자가 회룡마을에 있는 구멍가게를 지키는 노인에게 "회룡포 마을에 어떻게 들어가느냐?"고 물었더니, 그 노인은 별 생각없이 구멍이 숭숭 뚫린 그 다리를 떠올리며 '뽕뽕다리'라고 했답니다. 그 기자가 돌아가서 기사를 쓰려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뽕뽕'이란 말이 없더래요. 그래서 대신 '뿅뿅'을 썼다더군요. 기사를 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왜 뿅뿅다리냐?'고 문의 전화가 오는데 예천군에서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지요. 아무튼 하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결국 이름이 됐죠." 이런 내용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지금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름 때문에 웃는다. 국어사전에는 '뽕뽕'에 대해 '문풍지 따위가 뚫어질 때 잇따라 나는 가벼운 소리나 모양'이라고 설명한다. 구멍 뚫린 모양새를 봐서는 '뽕뽕다리'가 맞겠지만 어찌됐든 이름은 정해져 버렸다.
다시 내성천을 건너 출발점인 회룡마을에 닿는다. '용주시비'라는 안내판을 따라 잠시 오르면 그곳에 구계(龜溪) 김영락(1831~1906)의 '용주팔경시비'가 있다. 한때 용주로 불렸던 용궁 일대의 절경 8곳을 노래했다. 그 시 중 '무이청풍'(무이의 맑은 바람)에 나오는 구절로 짧게나마 회룡포를 둘러본 아쉬움을 달래본다. '무이촌에 묻혀사는 할아범께 묻노니/고기잡고 나무하며 이렇듯 늙어가오/뽕나무 그늘아래 개와 닭이 함께 놀고/온갖 세상 풍진 맑은 바람 씻지않소.' 그래 회룡포에 부는 바람도 참 맑고 맑았더라.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박용성 예천군 문화관광해설사 011-9856-6166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갤러리
김윤종 작-회룡포 초입에서
화가가 보는 시선은 과연 남다른가보다. 땅 위의 경치에 눈이 팔려있는 동안 작가는 하염없이 하늘을 떠가는 구름에 주목했다. 회룡마을에서 '뿅뿅다리'를 건너 회룡포로 들어가는 길목을 화폭에 담았다. 야트막한 언덕 길 아래에는 드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언덕을 넘어서면 회룡포 마을이 나온다. 저 멀리 보이는 산줄기가 바로 회룡대와 용포대(제2전망대)가 있는 곳이고, 가운데 골짜기는 산줄기에서 내성천쪽으로 내려서는 사림재이다. 작가 김윤종은 "볼수록 그릴 것도 많고, 이야깃거리가 샘 솟는 곳이 바로 회룡포"라며 "여름에 강줄기가 불어나고 초록이 산하를 가득 채우면 더욱 색다른 느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회룡포 마을을 둘러보기 전에 모래밭과 강변 언덕을 거닐어 볼 일이다. 산과 강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 바로 회룡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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