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 표어로 내세운 '强漢盛唐'(강성한 한나라와 번성한 당나라)은 현대 중국의 부흥이라는 민족적 염원을 대변하는 용어다. 표면적으로는 한나라 전성기 때 강력한 국력과 당나라 때 다민족'다문화의 화합 정신이 성세의 원동력임을 강조한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당나라 때만큼 인종차별이 극심한 적이 없었다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당의 번성기 때 거주 외국인만 100만 명에 달했다는데 당 조정은 외국인을 호인(胡人)으로 부르고 4등급으로 분류해 차별했다. 외인들은 당인과의 통혼이 금지됐으며 같은 의복을 입지도 못했고 특정 구역에서만 살도록 제한했다. 당인과 외인이 싸우면 이유를 불문하고 외인만 엄격하게 처벌할 정도였다. 외국인을 백노(白奴)와 황노(黃奴)로 구분해 노예로 부리기도 했다. 당 말기 호인 안록산의 난도 이런 외인 차별의 결과였다. 2005년 프랑스 전역 도시 외곽 274곳에서 일어난 북서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소요 사태인 '방리유(banlieue) 사태'도 이방인에 대한 제도적'심리적 차별에 대한 저항의 산물이었다.
외국인, 이방인에 대한 혐오는 시대를 막론하고 그 역사적 뿌리가 깊은 정치사회적 현안이다. 이를 '제너포비아'(Xenophobia)라고 하는데 이방인을 뜻하는 그리스어 제노스와 증오를 의미하는 포보스에서 유래했다. 외국인 차별과 거부, 멸시가 집단적인 사회현상으로 굳어져 공격과 방화, 살인 등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 유학생들이 러시아에서 인종 혐오주의자들의 테러로 잇따라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입었다. 2005년 이후 러시아에서만 벌써 다섯 번째다. 런던과 파리 등 유럽연합 내에서도 우리 유학생들이 외국인 혐오증에 희생되는 등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특히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신자유주의가 대두하면서 러시아 젊은이의 약 15%가 국수주의자나 네오나치주의자에 동조, 현재 모스크바에만 20여 개 스킨헤드 조직이 활동 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인터넷의 보급으로 제너포비아 현상이 급격히 확산되고 이들에 의한 증오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경찰 단속이 강화되자 범행 수법이 더욱 대담해지고 조직화하고 있는 추세다. 제너포비아의 확산을 막고 외국인 혐오 범죄가 준동하지 않도록 각국 정부의 공조 대책이 시급하다. 이대로 두었다간 피가 피를 부르는 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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