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방·東投 몰락 전철 동아백화점은 밟지 말아야"

2000년 8월 지역을 대표하는 건설회사였던 우방은 외환위기라는 큰 파고를 넘지 못하고 부도가 났다. 하지만 우방은 쉽게 넘어지지 않았다. 임직원들과 대구시민들은 향토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뜻을 모아 '우방 살리기'에 나섰다. 4년 걸려 우방은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믿었다. 2005년 부채 0원에, 현금은 1천800억원이 있던 우방을 C&그룹(당시 세븐마운틴)이 눈독을 들인 것이다. 충분히 회생 가능한 회사라는 판단에 C&그룹은 우방을 인수했다. 그러나 굴곡 많은 우방의 '팔자'는 부도난 지 4년 만에 새 주인을 만났다가 다시 4년 만에 은행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C&그룹 경영진의 무리한 사업 추진 때문이었다.

1989년 대구상공회의소가 산파 노릇을 하며 동양투자신탁이 태어났다. 당시 동양투신은 대구·대동은행에 이은 지역 3번째 규모의 금융기관이었다. 출발 예감은 좋았다. 영업개시 5개월 만에 3천억원, 1년 만에 7천억원이라는 기대를 웃도는 수탁고를 달성했다.

1997년 당시 총자산 규모 5조4천억원, 영업이익 695억원 등 국내투신사 중 가장 건실한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1995년부터 주식 매집을 통한 갑을의 '기업 사냥'에 덜미를 잡히면서 삼성그룹으로 경영권을 넘기게 됐다. 그래도 삼성이라는 막강한 새 주인이 나타난 것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그 기대감은 얼마 가지 못했다. 인수 2년 만에 삼성은 삼성투신운용사와 삼성증권의 합병을 이유로 동양투신을 흡수했다. 내실 면에서 국내 최고였던 동양투신은 하나의 지점으로 전락, 쓸쓸히 역사를 마감하게 됐다.

최근 이랜드그룹이 C&우방랜드와 동아백화점을 전격 인수한 것과 관련해 지역에서는 토종기업의 '쓸쓸한 퇴장'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걱정이 많다. 그동안 역외기업의 토종기업 인수가 곧 토종기업의 퇴장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동아백화점과 우방랜드는 '제2의 우방'이라는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방, 동양투신 외에도 지역 대표 건설사였던 청구와 영남건설 등도 법정관리 졸업 직후 외지기업에 M&A됐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토종기업들은 지역엔 명맥만 남겨둔 채 잇따라 서울로 떠났다.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인 ㈜드림F1 박윤환 대표는 "우방이나 청구, 영남건설 등 지역 대표 건설사들이 역외기업에 팔린 뒤 몰락한 것은 인수기업들이 신규투자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 경쟁력을 잃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했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김태일 교수는 "이랜드의 동아백화점 인수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민 고용 확대, 이익 지역사회 환원 등으로 이어지게 하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며 "대구시도 제도적인 강제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이랜드가 지역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 등 지자체장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C&우방랜드, 동아백화점을 잇달아 인수하는 등 이랜드의 지역 진출을 통해 이랜드의 본사 이전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계명대 경영학과 박명호 교수는 "유통분야는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산업인 만큼 대구시에서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이랜드 측에 대구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공헌할 것인지,지역상품은 어떤 것을 쓸 것인지 등의 대안을 먼저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 경제계 한 인사는 "대구를 세계적 섬유도시로 이끈 대표 기업인 옛 동국무역(TK케미칼)의 경우 1998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서울의 SM그룹에 인수됐지만 이후 10년 만에 본사가 대구로 이전하게 된다"며 "이는 신규투자 여건을 만들어주는 등 지역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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