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는 게 잘 안 보이는 탓에 쓰고 있던 안경은 콧잔등에 얹었다. 맨눈은 악보를 향하고 손가락은 적재적소에 움직인다. 움직임이 현란하지는 않지만 색소폰, 트럼펫, 기타는 멋들어지게 소리를 낸다.
백발의 악사들은 이마에 땀이 맺힐 만큼 열심이었다. 마이크를 쥔 퍼머머리의 가수는 복성을 짜내 머리 위로 터트린다.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실력이 녹록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말 울산시가 주최한 전국실버밴드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들은 어르신 밴드라고 불리는 '예그린 연주단'이다.
8일 대구 북구 침산동 한 건물에서 '예그린 연주단'을 만났다. 연주단은 25년 동안 명절을 빼고는 매주 월요일 오후 2시면 어김없이 모여 2시간씩 연습하고 있다.
이날도 16일 있을 대구노인일자리 정보한마당에서 선보일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손발을 맞추고 있었다. 대구에서 25년 가까이 활동해온 터라 '어르신 연주단'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연주단의 막내는 44세다. 최고령인 권영균(73) 단장은 평균 연령이 60세라서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예그린 연주단'은 1985년쯤 창단한 달구벌연주단에서 시작됐다. 당시 50대 막내였던 권 단장은 이제 최고참이 됐다.
권 단장은 "노인밴드, 할배밴드, 실버밴드…, 이름이 뭐 중요하냐"며 "신구 조화가 잘 돼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단원 1명이 들어오면 적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활동하기 때문에 1985년 이후 연인원은 60여명에 불과하다. 그 사이 10여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직업도 다양하다. 택시기사, 학원업, 보험업, 가요교실강사 등. 아직도 라이브 카페 등에서 현업으로 뛰는 사람도 있다.
어르신 밴드라고 설렁설렁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 갖출 건 다 갖췄다. 가수 6명(남3, 여3), 트럼펫, 트럼본, 테너색소폰, 알토색소폰 각 2명에다 드럼, 기타, 베이스, 오르간, 피아노까지 단원만 19명이다.
이들 상당수는 1990년대 중반까지 회관이나 룸살롱에서 연주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았다. 이들 중 일부는 공중파 방송의 전속악단 출신이다. 이들은 노래방과 컴퓨터 음향때문에 생업에서 내몰리는 아픔을 겪었다.
애로도 있다. 이들은 동년배들에 비해 난청이 심하다. 이 때문에 인터뷰 내내 했던 질문을 여러차례 반복해야 했다. 젊은 시절부터 커다란 악기소리에 귀를 늘 열어뒀기 때문.
그래도 이들은 과거 자신들의 젊음을 불태웠던 악기에 무한한 애정을 쏟았다.
개인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종술(55·트럼펫)씨는 15년간 밤무대 생활을 하다 7년 전 밴드에 입단했다.
김씨는 "트럼펫을 손에 놓은 지 1년 만에 다시 쥐고 희열을 느꼈다"며 "내 연주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나도 행복해진다. 이게 음악의 매력 아니겠냐"고 했다.
MBC주부가요열창 대상 수상자인 가수팀의 박경숙(59·여)씨는 밴드와 함께라면 어떤 무대든지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서다. 이들의 마음은 한결 같았다.
"평생해왔던 즐거움을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숨 넘어갈 때까지 하는거죠."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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