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수술 한번 받는게 소원"…만성신부전증 앓는 김해연씨

고 3인 권영미(가명·18)양은 금방 무너질 듯한 낡은 집에서 만성신부전증으로 하루 4번 복막투석을 해야 하는 엄마와, 잦은 경련·빈혈로 고생하고 있는 오빠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에 가장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는 영미는
고 3인 권영미(가명·18)양은 금방 무너질 듯한 낡은 집에서 만성신부전증으로 하루 4번 복막투석을 해야 하는 엄마와, 잦은 경련·빈혈로 고생하고 있는 오빠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에 가장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는 영미는 "엄마가 수술을 받아 완쾌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올해 고교 3학년이 된 권영미(18·가명)양은 지금껏 살아온 힘겨움보다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과 걱정으로 가슴에 응어리를 한움큼 담고 있다. 수년째 친구들은 물론 바깥 세상과 등지고 집안에서만 살아왔다.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엄마 병간호를 혼자서 도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 김해연(46)씨는 몇 해 전 여름 새벽녘에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집 인근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미 양쪽의 신장이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 상태였다. 김씨는 만성신부전증 판정을 받고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가난과 오랜 투병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영미는 허물어질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선 낡은 집에서 투병 중인 엄마, 오빠와 살고 있다. 아빠는 영미가 어릴 적에 집을 나간 후 소식이 없다. 공공근로와 공사판 막일로 살림을 꾸려왔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네 살 터울 오빠도 함께 살지만 영미가 가장이나 다름없다. 오빠는 엄마가 쓰러진 후 생활비를 벌겠다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다가 갑작스런 빈혈과 경련으로 쓰러져 수차례 사고를 당했다. 선천적으로 정상인에 비해 장(臟)이 짧아 잦은 경련과 빈혈을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영미는 "오빠는 사고 후유증으로 두통증세가 심해져 이제 아르바이트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창 공부에 빠져 살거나, 친구들과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으며 재잘거려야 할 영미는 엄마 병간호에다 살림살이 걱정으로 하루하루가 힘겨울 뿐이다. 또 내년에는 대학을 가든, 취업을 하든 집을 떠나야 할 형편이어서 엄마와 오빠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

◆하루 4차례 복막투석, 일시적 치료에만 의존

영미의 하루 일과는 새벽녘에 일어나 엄마의 복막투석을 돕는 것으로 시작된다. 배에 투석액을 주입해 복막을 통해 노폐물과 수분을 제거해야 한다. 여고생이 감당하기에는 다소 무서운 일이지만 영미가 엄마를 위해 치료를 도울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 영미 어머니는 하루 4차례씩 복막투석을 해야 한다.

영미는 "복막투석은 투석과정에서 몸에 필요한 단백질 등이 빠져나가 적절한 식이요법이 필요하지만 형편상 엄두도 못낸다"며 "엄마에게 영양실조 등 다른 합병증이 생길까 걱정"이라고 했다.

지금의 영미네 형편으로 복막투석은 엄마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잠시라도 투석을 소홀히 하면 이내 엄마의 상태는 최악이 된다.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병원으로 옮겨져 복수를 제거하고 입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초음파 검사를 통해 신장 손상 정도를 알아보자고 권했지만 진료비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완치를 위해서는 신장이식을 받아야 하지만 영미네 형편으로는 수천만원이 필요한 수술은 생각도 못할 처지다. 지난해엔 신장기증 신청이라도 할까 싶어 경북대 병원을 찾았으나 검사비만 수백만원이라는 말에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온기 없는 싸늘한 방에서 행복 찾기

영미는 어릴 때부터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 술로 세월을 보내던 아빠가 집을 나가 영세민 아파트 관리비를 내지 못해 쫓기다시피 나온 이후 영미네 세 식구는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해 두세 달에 한번 꼴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나마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주인이 월세없이 살도록 해 영미네의 새로운 희망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영미네는 기초생활수급과 엄마의 장애인연금 등으로 매달 지원되는 50여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엄마와 오빠의 약값과 병원비를 겨우 감당하는 수준이다 보니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에도 연탄불 한번 피워보지 못했다. 냉방에서 전기장판 한 장으로 겨울을 난 것. 오빠가 지내는 방도 비만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샌다. 뒷산에서 흘러내린 흙이 집 뒤편 벽을 짓눌러 언제 허물어질지 모를 정도로 낡은 집이지만 영미는 그나마 세 식구가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영미는 가난이라는 굴레의 힘겨움보다, 자신의 진로보다, 엄마의 건강을 먼저 챙기는 효녀다. 아직 젊은데, 아직 한참을 재미나게 살 수 있는데, 지금이라도 수술을 받으면 나을 수 있다는데 돈이 없어 어쩌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했다.

취재를 마치고 영미네 허름한 집 앞 골목길을 내려오다 안동시가 달아둔 '행복길'이라는 길이름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매일 이 길을 오르내리며 희망과 행복을 갈망할 영미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지금은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는 영미에게도 언젠가는 활짝 웃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글·사진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 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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