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 닥터] 사회지도층 잇단 자살 왜

성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실패에 대한 공포 느끼고 우울증에 빠진다

최근 학계'의료계'산업계 권위자들이 잇따라 자살해 크게 보도된 바 있다. 지난 20일 국내 유명 대학병원 김모 교수, 24일 국내 초전도체 분야 최고 석학이라 알려진 유명 사립대 이모 물리학과 교수, 지난달 26일 삼성전자 부사장급 임원 이모씨…. 이들은 대부분 생을 마감하기 전 우울증 치료약을 복용했거나 스트레스로 불면증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2007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34명, 10만명당 자살 사망률 24명으로 자살 증가율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10만명당 10명을 밑돌던 자살률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자살은 국내 사망 원인 중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에 이어 4위에 올랐다. 교통사고보다 1.7배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의사'과학자'최고경영자(CEO) 등 소위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상위 엘리트 계층으로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아 왔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충격이 더 컸다. 이처럼 남부러울 것 없고 인생에서 정상에 오른 상류층 인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실적을 중시하고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한국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고 크게 성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실패에 대한 공포를 더 심하게 느끼고 우울증에 빠진다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앞과 위만 보고 살며 고속성장을 이끈 주역들이 지금은 나이 등을 이유로 내리막길에 접어든 사람이 많은데,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처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작은 실패에도 자신을 쉽게 패배자로 낙인찍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좁히지 못해, 즉 우수한 실적을 남기지 못하면 언제든 사회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또 경제력이 있더라도 일평생 쌓아온 자신의 권위와 명성이 추락했거나 혹은 상실될 거라고 느낄 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려 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자신에 대한 무가치함, 의욕상실, 삶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주된 증상인 우울증 등은 기본적으로 자살 시도자의 60% 이상이 경험하는 질환이다. 사회적으로 높은 책무나 위치에 있으면 책임감도 크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기 때문에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 문제가 오는 경우가 많다.

유명인일수록 우울증 치료에 적극적이지 못한 게 자살률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주변 시선과 평가 때문에 제때 병원을 찾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병원을 찾아온다고 해도 지속적'적극적 치료보다는 혼자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쉬쉬 하고 감추려 하는 경향이 크다.

선진국일수록 정신건강에 관심이 많고 평소 정신건강 측정을 자주 한다. 선진국 기업이나 대학 가운데 정책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지원하는 제도를 잘 갖춘 곳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이런 문화에 대해 아직 많이 어색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걸쳐 스트레스와 정신건강과 관련해 관심도를 높여 정신건강을 잘 챙기는 문화로까지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즘 국민들은 건강검진을 받는 등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이는 육체적 건강에만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고(高)위험군일수록 함께 나누며 적극적으로 상담도 받는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상시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불규칙적이고 과로가 반복되는 생활을 피하고 적절한 수면을 유지하면서 하루 30분 정도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게 좋다. 스트레스가 떨어뜨리는 부교감계 신경을 활성화시키는 명상'참선'복식호흡 등 운동법도 권할 만하다.

정작 본인은 정신적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친구든 가족이든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을 곁에 두고 서로 부대끼며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다. 1등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결국 이 세상에는 나 혼자로 외로울 뿐이라는 관념을 피해야 한다.

서완석(영남대병원 정신과 교수) 문의:053)620-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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