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면 빈대떡 대신 파스타가 먹고 싶다. 중국집에 가서도 단무지 대신 피클을 주문한다.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프라이팬을 잡는다. 드라마 '파스타'가 남긴 '파스타 폐인' 증세다.
한 레스토랑 사장이 들려준 일화도 재미있다. 스테이크를 시켜서 다 먹고 난 두 명의 중년 남성이 파스타를 또 주문했다. '요새 드라마에서 나오는 파스타를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것. 드라마 덕에 평생 처음 파스타를 먹어본 사람이 있을 정도다. 파스타를 집에서 만들어 보기 위해 질 좋은 프라이팬을 구입했다는 주부들은 부지기수.
9일 막을 내린 드라마 '파스타'는 폐인들을 낳으며 높은 시청률로 행복한 마무리를 했다. 요리하는 사람들은 드라마 '파스타'를 보며 '지금까지 요리를 소재로 한 드라마 중 가장 현실에 가까운 드라마'라 평했다. 실제로 파스타 전문점은 드라마 '파스타' 덕을 톡톡히 봤다. 파스타 전문점에는 드라마에서 소개됐던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와 '봉골레 파스타' 주문이 유독 많았단다.
그렇다면 실제 이탈리안 레스토랑 주방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벨라 쿠치나의 주방에 들어가봤다.
5일 낮 12시 20분. 주방에 서서히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파스타 요리에 와인을 끼얹자 프라이팬에 불이 붙는다. 요리사들은 불 위에서 파스타가 든 프라이팬을 끊임없이 움직여주며 재빨리 요리를 완성해낸다. 완성된 파스타는 요리사가 정성스러운 손길로 접시에 담고 접시 주변을 깨끗하게 닦는 걸로 마무리된다. 종을 '땡' 치면 홀에서 음식을 가지러 온다. 한쪽에선 해산물을 삶아내고, 다른 한쪽에선 빵을 접시에 담는다. 드라마 '파스타'에서 보던 장면과 흡사하다.
하지만 드라마와 달리 없는 것도 있다. 말끝마다 붙는 '예스 셰프'라는 말. 사실 우리나라에선 '셰프'라는 단어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서로를 부를 때면 '부장, 과장' 등 서로의 직함을 즐겨 부른다. 사사건건 고함 치는 까칠남 최현욱(이선균 분) 셰프가 있어도 좋으련만, 주방은 오히려 조용하다. 재료를 자르고 장식하느라 저마다의 일에 분주하다. 질서정연한, 잘 정돈된 요리 같다.
주방의 홍일점 전숙현(31)씨는 "주방에서 서열이 분명하긴 하지만 드라마처럼 엄격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보통 레스토랑 주방에서도 '붕쉐 커플'(이선균과 공효진 분)과 같은 커플이 나올 수 있을까? 현직 요리사들은 '노'라고 답한다. 전씨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고 말했다.
라 벨라 쿠치나에서 프라이팬을 잡고 파스타를 요리하고 있는 요리사는 모두 남자다. 서유경(공효진 분) 같은 열혈 막내 요리사는 없을까?
라 벨라 쿠치나 김수식 셰프는 "막내가 요리 하나 잘 한다고 메인 파트에 서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주방 전체를 알아야 비로소 프라이팬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주방의 일은 크게 콜드(cold) 파트와 불을 사용하는 핫(hot) 파트로 나뉜다. 주로 여성 요리사들이 배치되는 곳은 콜드 파트. 에피타이저, 샐러드 등 섬세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메인 파트인 핫 파트는 주로 남성 요리사들의 몫이다. 칼과 불을 다루는 일인데다 강한 체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핫 파트의 업무는 '용광로에서 쇠 녹이는 작업'에 비유될 정도다.
그래서 유명한 셰프 가운데 유독 여성이 드물다. 요리업계에서 '주방장'이 된 여성은 '독한 여자'라고 불릴 수밖에 없다. 하루 20시간 이상 주방에서 일하지 않고서는 주방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여성 셰프들은 있다.
이탈리안 식당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빵 굽기. 그 다음에 피자, 파스타, 메인 요리 순이다. 프라이팬을 잡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5년가량이다. 작은 업장에서도 1, 2년의 경력을 쌓아야 가능하다.
드라마 '파스타'는 끝났지만, 지금도 크고 작은 레스토랑의 식당에선 최고의 요리를 위한 최현욱 셰프와 서유경의 고군분투가 계속될 것 같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igsu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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