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극적 순간에 남긴 감동의 유묵들

·순국 100년 안중근 특별전/ 국립대구박물관/ ~4.25

일제의 식민지로 병탄된 기간 저들에 의해 유린된 약탈의 흔적들은 알면 알수록 너무 크고 깊다. 올해로 경술국치가 100년이 되었지만 자료를 볼 때마다 마치 새로 난 상처를 건드리듯 아프다. 때맞춰 국립대구박물관에서는 대구서 발원되었던 국채보상운동과 안중근 의사를 연결한 특별전을 개최해 더욱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전시는 안 의사의 거사와 일생에 대한 사진 자료의 설명으로 시작해 평소 그의 교양과 애국 충정, 그리고 지사적 면모를 드러낸 유묵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글씨들은 모두 그가 일제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던 1910년 2월 14일부터 순국하던 3월 26일 이전 사이 40일간에 쓴 것이다. 그 동기는 당시 재판에 관계했던 일인들의 요청에 의해 비롯됐고 그들에 의해 간직되다 전해진 것들이다. 글씨의 내용에서 군자의 본보기와 독립의 염원, 나아가 세계 평화와 종교적 내세관에 이르기까지 전인적 교양을 갖춘, 구한말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형적인 한 모습을 확인시켜준다.

안중근의 글씨는 신운을 강조한다는 안진경체에 가깝겠다.(이동국 전시 큐레이터의 평을 참조하면) 우아한 서체의 왕희지에 비해 안진경은 기세가 드높고 웅장, 중후, 강건해서 남성적인 박력 속에 균제미를 발휘한 만고충절의 필법이라고 한다. 그의 '붓을 곧게 세워 머리를 감추고 꼬리를 보호하고 있는 형태'는 필압의 경중과 지속의 대비가 분명하여 작품에 긴장과 이완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는데 왜 아니겠는가. 되도록 선입견 없이 필획 자체의 미적인 측면만 직시해보려고 애써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말미서 '極樂'(극락)이라는 두 자를 보는 순간 콧잔등이 시큰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장렬한 최후를 앞두고 강인한 정신의 의연함을 잃지 않던 마지막 순간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취하는 경건함과 초연함 앞에서 숙연해짐을 금치 못한다.

옛사람들은 좋은 작품을 구해 둘러보는 것을 전관이라 하고 특히 존숭하는 작품 앞에서는 배관한다는 말을 썼다. 예술 작품에서 느끼는 감동은 짜릿하든가 먹먹해지든가 어쨌든 신체적인 반응을 수반한다. 그 정도가 작든 크든 결코 머리로 이해하거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과는 다른 성질의 느낌으로 온다. 그래서 작품을 대할 때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태도보다 직관하려는 자세로 다가가는 쪽이 더 낫다. 감상에서 감동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명 끝에 낙관 대신 찍은 무명지 한마디가 없는 장인(掌印)을 보면 마치 그의 충혼을 가까이서 대하듯 숭고해진다. 복제된 사진 이미지와 달리 실로 작품을 감싸고 있는 아우라가 어떤지 체험하게 돼 감격스럽다.

미술 평론가(ydk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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