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범죄자의 얼굴

범죄자에 대한 극한의 형벌은 사형이다. 과거에는 죄질이 극악한 범죄자에게 죽은 뒤까지 벌을 내렸다. 잘린 머리를 높은 곳에 매달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효수(梟首)다. 조선시대에는 반란을 일으킨 수괴의 머리를 임금에게 올리는 헌괵례까지 있었다. 1729년 이인좌의 난이 평정된 뒤 반란군 일당의 머리가 서울로 보내지자 영조가 친히 남대문 문루 위에서 받는 예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가장 참혹한 효수는 1812년 홍경래의 난 때 벌어졌다. 정주성에서 석 달 넘게 저항하던 홍경래군을 진압한 관군은 성내에서 3천 명을 붙잡아 어린아이와 여자를 제외한 1천900여 명을 참형에 처하고 효수했다.

형벌 이론으로 보면 범죄자의 머리를 잘라 공개하는 효수는 지은 죄에 마땅한 응보(應報)나 재범 방지 같은 범죄인에 대한 특별예방보다 가혹한 형 집행을 통해 사회 전반의 범죄 발생 가능성을 줄이려는 일반예방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근대 이후에는 형벌뿐만 아니라 형사입법과 유죄판결까지 대중들이 알도록 함으로써 법질서의 불가침성을 확증해 보이는 적극적 일반예방의 방법들이 많이 활용된다.

10일 검거된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피의자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경찰은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때 얼굴 공개에 따른 인권 침해 논란이 일어난 뒤로는 아무리 중대 범죄의 피의자라도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 숨겨왔다. 2005년 '범죄자의 초상권도 인권 차원에서 보호돼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있은 이후 연쇄살인범 강호순, 정남규 등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범죄자들의 얼굴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공개 이유에 대해 경찰은 '공개수배로 이미 사진이 공개됐고 물증이 확실해서'라고 밝혔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적 관심이 크고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 사안에 따라 선별적으로'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얼굴 공개 정도로 일반예방의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현대사회가 너무 복잡 다양하다. 적극적인 입법과 판결, 엄격한 처벌과 무분별한 감형 억제 등 법제도 전반의 정비가 전제되지 않으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공산이 크다. 부지런한 국회, 일관성 있는 사법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이유다.

김재경 특집팀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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