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적십자병원 떠나면…"우린 어쩌나"

빈곤층 외국인노동자 등 年 2만∼3만명 찾던 '의료안식처' 없어져

11일 치료를 받기 위해 대구적십자병원을 찾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자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병원문을 나서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11일 치료를 받기 위해 대구적십자병원을 찾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자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병원문을 나서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11일 오전 대구 중구 남산동 대구적십자병원. 김모(56·경산시 진량읍)씨가 불 꺼진 복도를 따라 힘없이 걷고 있다. 4년 전 교통사고로 다친 다리가 심하게 부어올라 병원을 찾았지만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반 병원에는 갈 수가 없다. 치료비가 비싼데다 집을 나가 수년째 연락이 끊긴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받지 못했기 때문.

김씨는 "의사들이 모두 퇴직했다고 하는데 적십자병원이 아니면 우리 같은 사람은 치료받을 곳이 없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대한적십자사가 '대구적십자병원의 매각·이전은 타당성이 없다'는 외부용역 결과(본지 3월 11일자 1면)에도 병원 폐쇄와 이전을 강행키로 해 지역 의료 빈곤층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진료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대구적십자병원의 의료보호환자 입원 진료비율은 70~80%에 이를 정도로 의료 약자들에게는 절대적인 치료 안식처다. 적십자병원은 2005년 3만490명(79%), 2006년 3만4천181명(76.1%), 2007년 2만9천783명(68.4%), 2008년 2만5천938명(67.2%)의 '의료약자'가 진료를 받았다.

이 병원을 자주 이용했던 J(61)씨는 "대구적십자병원은 지하철이 있고 교통편이 좋다"며 "대구의료원이나 멀리 있는 병원으로 가려면 몸이 아파서도, 교통비가 부담돼서도 갈수 없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생활보호대상자인 환자들도 대구적십자병원 폐원으로 치료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의료급여를 지원받기 때문에 일반 병원에서도 적십자병원과 같은 조건으로 진료받을 수 있지만 병원과 다른 환자들로부터 차별을 받기 때문.

간질을 앓고 있는 A(45·생활보호대상자)씨는 지난달 발작을 일으켜 일반 병원을 찾았지만 일주일을 못 견디고 병실을 뛰쳐나왔다. 다른 환자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이다. A씨는 "최소 2주일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구박을 하고 병실을 옮기라는 눈치를 준다"며 "가난한 환자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아 너무 서럽다"고 말했다.

현재 2만여명인 대구 거주 외국인 근로자들의 진료도 막히고 있다. 특히 불법체류자 신분의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적십자병원처럼 공공의료 기관이 아니면 치료받을 곳이 없는 처지다.

이에 대해 대구적십자병원 관계자는 "2007년부터 대구 적십자병원 진료과목과 병실이 축소되면서 생활보호대상자 의료실적(70% 안팎)이 줄긴 했지만 20% 안팎의 일반 병원에 비하면 훨씬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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