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서울에서 제일 집값이 비싼 여의도의 어느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서 거둔 불우이웃돕기 학용품을 나눠 주는 일로 고민에 빠졌다. 당시 교육청은 그 학교에서 거둔 물품은 그 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나눠 주도록 했다. 고민 끝에 학교는 공영 회사가 지은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을 가난한 부류로 꼽아 연필을 나눠줬다. 다음날 가난이라곤 전혀 모르고 살던 아이들과 부모들이 난리를 쳤고 선생님들은 해명을 하느라 쩔쩔매는 일이 일어났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억지로 나누다 보니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부자는 맨션에서 살고 가난한 사람은 맨손으로 산다. 부자는 개소주를 마시고 가난한 자는 깡소주를 마신다. 부자는 쇠고기를 먹고 가난한 사람은 쇠고기라면을 먹고 산다. 부자는 사우나서 땀을 빼고 가난한 사람은 사우디서 땀을 흘린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던 시절의 유머다. 개발 시대 사람들은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 더 큰 문제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극명하게 갈리는 모습들이 잦아진다. 빈부의 차이가 정책 결정에 있어 다툼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초중학생의 무상급식 문제가 교육계는 물론 정치권의 주된 논쟁거리가 됐다. 부자에게는 5만 원의 급식비가 아무 문제가 아니라며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쪽과 돈이 없어 상처받는 가난한 아이들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측 간의 논쟁이 치열하다.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도 따지고 보면 가난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개발 과정의 2층짜리 다가구주택에서 같이 살던 네 가구가 이사 가고 달랑 남은 집을 하교 후 혼자 지켜야 했던 게 불행을 불렀다는 것이다. 매시간 순찰차가 돌고 환하게 불이 켜진 부자 동네였다면 애당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의 소리도 있다.
많이 가지면 그만큼 많이 얽매인다며 무소유를 강조하던 법정 스님이 입적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고 한 스님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이 불행을 불러온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안한 삶을 강요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한다면 과연 부자에게는 안전한 나라일까.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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