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와 함께] 구미원예수출공사 화훼 농사

온실속 정성어린 사람 손길…형형색색 꽃 보다 아름다워

개화 정도가 비슷한 국화를 열송이씩 뽑아 잎을 추려내고 컨베이어 벨트에 싣는 작업.
개화 정도가 비슷한 국화를 열송이씩 뽑아 잎을 추려내고 컨베이어 벨트에 싣는 작업.

꽃이라니. 아내에게 꽃 선물해본 일조차 언제인지 아득한데 화훼 농사 체험이라니…. 그래도 자연을 만난다는 건 즐거운 일. 꽃샘추위에 막힌 봄이 더디게 북진하는 중이라고 해도 때는 삼월이라 발걸음 가볍게 구미로 향했다. 8일 낮 찾아간 체험지는 낙동강변 10만㎡가 넘는 부지에 널찍하게 자리한 구미원예수출공사 유리온실이었다.

◆유리온실

무려 8만2천644㎡(2만5천평) 크기의 온실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외투를 벗기 싫은 날씨여서 오히려 따뜻한 온실에 얼른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작업복을 입고 온실에 들어선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가로·세로 족히 200m는 돼 보이는 온실은 그야말로 국화 천지였다. 이제 막 꽃봉오리를 머금은 것부터 만개를 눈앞에 둔 것까지 수십만송이의 국화가 펼쳐진 풍경은 장관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해 보였다.

온실은 2개 동으로 나눠 마치 양계장처럼 구역마다 생장 정도가 달랐다. 기자가 들어선 동쪽 동은 수확이 계속되는 데 비해 서쪽 동은 이제 막 심었거나 한창 키를 키우는 중이었다. 안내한 김희종 사업팀장에게 물어 보니 각 동은 16개 구역(section)으로 나뉘고, 각 구역은 길이 75m 폭 8m의 베이(bay) 3개로 나눠져 있었다. 베이에 따라 품종과 색상이 다르고, 구역에 따라 성장 시기를 달리 해 일주일에 7~10개 베이에서 일년 내내 수확이 이뤄진다. 베이당 심고 수확하는 양은 분기마다 3만송이. 4기작을 통해 이 유리온실에서 연 평균 수확하는 국화는 1천200만송이에 이른다.

◆국화 수확

김 팀장은 "일이 손에 익지 않았으니 재미 삼아 슬슬 해 보라"며 기자를 수확 중인 베이로 이끌었다. 50㎝ 정도 높이에 가로·세로 5㎝씩 철사로 만든 칸마다 국화꽃 송이가 하나씩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3.3㎡당 150송이가 넘는 숫자다. 바쁘게 일손을 놀리는 아주머니들과 나란히 서서 일하다간 아무래도 뒤처질 것 같아 혼자 몇m 앞에서 시작했다. 작업은 단순해 보였다. 개화 정도가 비슷한 국화를 골라 뽑아 아랫부분 잎을 손으로 훑어낸 뒤 열송이씩 컨베이어에 올리는 일이었다.

어느 걸 뽑아야 하나 머뭇거리는데 아주머니들이 금세 따라붙었다. 급하게 손을 움직였지만 요령이 없으니 더딜 수밖에. 게다가 국화는 키가 평균 75㎝나 돼 뽑아올리고 잎을 추리기도 만만찮았다. 더 큰 문제는 좁은 통로. 이랑 사이로 철사 칸이 없는 통로를 냈으니 폭이래야 50㎝ 남짓. 몸을 틀기조차 어려웠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 반복한 뒤 열송이가 되면 몸을 돌려 컨베이어에 올리기를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등줄기가 땀으로 축축해졌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기자에게 막혀 손을 멈춘 아주머니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민망해서 몇 걸음 앞으로 나가려다 가만히 보니 아주머니는 20℃가 넘는 온실에서 작업하면서도 두툼한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꽃향기 가득한 온실에서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물었더니 '농약 냄새 때문'이라고 했다. 국화는 진딧물 같은 병충해가 쉬 오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번은 반드시 농약을 친다는 것이었다. 마스크를 낀 채 아주머니들은 1인당 하루 평균 5천송이를 수확한다고 했다.

◆담아 옮기기

출하가 바빠 얼마 하지도 못하고 수확 구역에서 떠밀려 나오는데 김 팀장이 컨베이어 끝으로 이끌었다. 열송이씩 실려온 국화를 비닐봉지에 담는 곳. 장비에 달린 비닐봉지에 열송이씩 꽂아 당겨내고 수레에 싣는 작업이었다. 비 맞은 우산을 꽂아 당기면 비닐봉지에 싸이는 장치와 같은 구조였다. 옆에서 작업하는 걸 지켜보니 2, 3초에 한봉지씩 수레에 척척 쌓였다.

어렵지 않겠다 싶어 한 자리를 차지했는데 이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비닐 크기가 열송이에 꼭 맞다 보니 꽂을 때마다 꽃봉오리 부분이 걸렸다. 혹시 꽃을 망칠까 싶어 조심조심 밀어넣으려니 진땀이 흘렀다. 몇 봉지를 담았을까. 맞은편 작업자의 손길이 원래보다 훨씬 빨라져 있었다. 쉴 새 없이 컨베이어에서 쏟아지는 국화들이 점점 쌓이고 있는데 초짜가 굼벵이짓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공연히 일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 손을 떼고 물러섰다. 잠시 후 여러대의 수레가 가득해지자 한 아주머니가 수레를 포장 작업장으로 밀고 가는 게 보였다. 힘 쓰는 일이야 대수겠냐 싶어 손잡이를 잡고 끙 힘을 줬다. 온실에서 빠져나와 꼬불꼬불 포장 작업장으로 가려니 수레 몰기가 조심스러운데, 아니나다를까 또 문제가 생겼다. 뒤의 아주머니들이 수레를 빠르게 밀면서 마구 달려오는 게 아닌가. 한번의 힘으로 속도를 내 폭 1m가 넘는 수레를 자유자재로 몰고 가는 아주머니들의 솜씨는 베테랑 운전자를 방불케 했다. 부딪힐까 싶어 한쪽 옆으로 끙끙거리며 뒤뚱뒤뚱 밀고 가는 기자의 모습은 초보운전 그 자체였다.

◆상자 포장

구미원예수출공사에서 수확한 국화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된다. 국화의 키를 75㎝까지 키우는 이유도 일본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는 데 사흘 이상 걸리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꽃대의 수분은 아래부터 마르기 때문에 일정 정도 자르고도 50㎝ 이상의 상품으로 팔려면 꽃대가 그만큼 길어야 한다.

국화 출하는 일주일에 3일씩 일·화·금요일에 이루어진다. 컨테이너 차량이 와서 배로 직송한다. 컨테이너에는 2만송이 단위로 싣는데 일요일엔 6만~10만송이, 많이 나갈 때는 20만송이까지 나간다.

컨테이너에 실어 수출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포장이 필수. 비닐봉지에 담긴 국화는 보습 효과가 뛰어나고 벌레가 싫어하는 신문지로 한번 더 싼 뒤 종이상자로 포장한다. 한 상자에 100송이씩 담아 두 상자를 밴딩기로 세번 묶은 뒤 출하 도장을 찍어 컨테이너에 싣는다.

밴딩기 앞에 서니 수출품의 마지막 작업이라는 책임감이 들었다. 아주머니들이 차곡차곡 담은 상자를 밴딩기로 묶어 도장을 찍고 지게차에 얹는 작업. 철컥, 철컥, 철컥 리듬에 맞춰 정확히 댔는데 밴드는 이리 삐뚤, 저리 삐뚤 감겼다. 몇 상자를 싣고 돌아보니 국화를 담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멈춰 있었다. 하루에 1천 상자 안팎을 포장하려면 속도가 필요한데 미숙련공의 솜씨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육묘와 심기

서쪽 온실로 들어가니 또 다른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국화 모종을 채취하는 모본장과 뿌리를 내리게 하는 육묘장이 앞쪽을 차지하고, 그 뒤로 각기 다른 종류와 키의 국화들이 한창 생장 중이었다. 자연에서 계절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국화의 성장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교과서 같은 풍경이었다.

모본장은 6천㎡가 넘는 규모. 작업하는 곳으로 가 보니 아주머니들이 기존 국화 위에 돋은 새순을 5㎝ 길이로 잘라내고 있었다. 양동이를 깔고 앉아 칼을 잡았지만 여린 새순을 같은 길이로 잘라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참을 쭈그리고 있었는데도 고작 한움큼. 8명이 일주일에 평균 20만본 이상 채취한다니 이 속도로는 부지하세월이었다.

채취한 모본은 블록 모양의 흙에 심어 육묘장으로 옮긴다. 뿌리를 내릴 때까지 2주 정도 육묘장에서 적절한 온도와 습도 아래 관리된 뒤 지정된 베이로 옮겨 심는다. 육묘장에는 베이로 옮겨질 어린 국화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열상자씩 쌓아 베이로 가다 보니 늘씬하게 자라고 있는 국화들이 동생을 맞듯 싱그런 향을 풍겼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국화가 수출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체험하고 나니 꽃 한송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형형색색의 꽃을 길러내는 자연의 신비로움이야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꽃에 담기는 사람들의 수고로움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무딘 손으로 전체 작업과정을 체험하느라 끼친 손해가 적잖을 텐데, 김 팀장은 옷을 털고 나오는 기자에게 국화 한다발을 안겨줬다. 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이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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