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조금 일찍 찾아오나 싶었는데, 이번 주는 때늦은 춘설(폭설이라고 해야 하나)과 함께 꽃샘추위가 심술을 부렸다. 겨울잠에서 깨던 개구리가 놀라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고 조급하게 망울을 터뜨리던 잎과 꽃들이 얼어붙었을 것만 같다. 그래도 이젠 봄이 조금씩 남쪽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지 않을까 기다려 본다.
3월 14일은 바흐, 헨델과 함께 후기 바로크 시대 독일 음악의 위대한 작곡가였던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3.14-1767.6.25)이 브란덴부르크의 작은 마을 마그데부르크에서 태어난 날이다. 사실 지금은 바흐나 헨델이 더 널리 알려져 있고 위대한 작곡가로 여겨지고 있지만 당시의 독일에서는 텔레만이 바흐보다도 훨씬 더 유명했다고 한다. 특히 1722년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있던 요한 쿠나우가 죽자 텔레만에게 이 자리가 돌아갔지만 그의 거절로 바흐가 그 자리를 맡게 되었다는 일화는 당시 독일에서 텔레만과 바흐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텔레만은 1천80곡이라는 많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 바흐보다도 더 많은 음악을 작곡한 다작(多作)의 인물이기도 하다.
루터파 프로테스탄트 교회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난 텔레만은 어릴 적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지만 음악가라는 직업이 당시에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별로 인정받지 못하던 때라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훗날 바이올린, 리코더, 오보에, 비올라 다 감바, 클라비어 등의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줄 알게 된 것은 혼자 음악공부를 한 결과였다. 텔레만의 독학은 작곡 분야에서 더욱 빛을 발했는데, 독창·합창·관현악을 위한 소규모 칸타타에서부터 대규모 종교음악, 오페라와 같은 세속음악에 더하여 다양한 실내악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곡을 작곡하는 데 다다른다.
텔레만의 또 다른 업적은 학생들과 직업음악가들을 모아 만든 일종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단인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 창단이다. 그는 이를 통해 공공연주회를 기획해 시민들에게는 다양하고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고, 작곡가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생존시 바흐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텔레만이 바흐에게 새로운 곡을 써서 콜레기움 무지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공연하게 했다는 기록은 작곡가, 지휘자, 그리고 음악기획자이자 오케스트라단 운영자로 살았던 텔레만의 적극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증명하고 있다.
텔레만은 이렇게 작곡가, 연주가, 지휘자, 기획자로서뿐만 아니라 생전에 자서전을 두 번이나 쓸 만큼 문필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했다. 자신의 작품집이 새로 인쇄되어 나올 때 서문을 직접 쓰거나 연주법에 관한 세부 지시사항을 기록하는 일은 다반사였다고 한다.
1733년 오늘날 '식탁음악'(Tafelmusik)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편성의 실내악과 관현악곡 모음집의 출판은 독일뿐만 아니라 북유럽, 러시아, 영국, 프랑스에서 예약 주문이 쇄도할 정도로 인기였다고 하니 생전의 텔레만이 얼마나 행복한 음악가였을지 충분히 상상이 된다. 자연스러운 멜로디와 대담한 화성, 그리고 밝고 경쾌한 리듬은 텔레만의 음악을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보편적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 주었다. 심오한 듯하면서도 기지가 넘치고 가벼운 듯하면서 진지함을 잃지 않은 텔레만의 음악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클래식 음악(이름 그대로 식탁에서의 편안한 음악처럼)으로 다시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최영애 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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