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무원인 박모(34·여)씨는 요즘 들어 미팅이나 맞선에 대한 생각이 확 달라졌다. 박씨는 "과거에는 미팅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기회가 와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결혼을 위해 그런 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가야 한다고 주위에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생각을 바꾼 것은 2년 전 대구시청에서 주최한 미팅 이벤트였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기 때문. 박씨는 "당시 아버지가 신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참가했는데, 만약 그때 미팅 자리에 가지 않았다면 아직 결혼을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2. 평소 수줍음이 많아 여성과 만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였던 직장인 이모(34)씨. 결혼하기 위해 결혼정보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맞선도 여러 차례 나가봤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할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스피치학원에 다니는 것. 여성이 혹할 정도로 화려한 화술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적절히 말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였다. 3개월여에 걸쳐 피나는(?) 훈련을 받은 결과, 지금은 나름의 효과를 보고 있다. 이씨는 "이제는 미팅 자리에 가도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일은 상당히 줄었다"며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때가 되면 다 한다" "인연은 따로 있다".
결혼 적령기가 돼도 연애에 이렇다 할 진척이 생기지 않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주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내가 원하는 이성을 직접 찾아나선다. 한발 더 나아가 그런 이성을 만나기 위해 먼저 자신을 적극적으로 꾸민다. 이른바 '혼활'(결혼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우연이나 인연을 믿는 소극성에서 탈피해 연애나 결혼도 스스로 개척한다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미혼남녀의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져 결혼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세태의 한 단면으로도 보인다.
◆혼활 열풍
혼활 바람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연애 기술을 가르치는 결혼정보회사의 캠프가 조기에 마감되는가 하면 결혼적령기 남녀들을 위한 연애전문학원까지 생겼다. 국내의 한 유명 결혼정보업체는 지난해 모두 5차례의 '혼활 캠프'를 열었다. 캠프 때마다 30~50명을 모집했는데 신청자가 정원의 3~7배에 이르렀다. 캠프는 연애 화술을 비롯한 실전 연애 비법과 이미지 메이킹, 이성 심리학, 결혼 재테크 노하우 등 연애와 결혼에 필요한 내용을 집중 강의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7월에는 국내에 연애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까지 생겼다.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강좌 외에 일대일 맞춤형 강좌까지 이뤄지고 있다. 이 학원 관계자는 "수강생 가운데 지방 남성이 적잖았는데 대구에서 정기적으로 올라와 강좌를 듣는 사람도 여럿이었다"고 했다.
기업들의 직원 간 미팅 이벤트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LG전자와 삼성물산, GS칼텍스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과 대한송유관공사, 수자원공사, 강남구청 등이 사내 직원 복지정책의 하나로 미팅 이벤트를 도입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윤영준 팀장은 "미팅 이벤트는 단순히 사람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게임, 장기자랑 등으로 재미있게 진행돼 참가자들의 반응이 좋다"며 "직원 사기 진작 차원에서 기업들의 신청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구에서도 대구시청, 대구은행 등이 이벤트성 미팅을 열었다. 대구시청은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2008년에 일반인과 각 기관 직원들의 신청을 받아 미팅을 주선했다. 당시 300여명이 참가해 호텔에서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 순환하는 형식의 단체 미팅이 진행됐다. 대구은행도 지난해 봄·가을 각 지점에서 추천한 우수 고객 자녀를 연결해주는 맞선 이벤트를 개최해 고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왜 혼활인가
최근 혼활이 뜨는 데는 결혼에 대한 젊은이들의 달라진 인식이 깔려 있다. 과거에 비해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결혼하는 것 자체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남녀 평균 초혼 연령은 각각 31.38세와 28.32세였다. 10년 전(남자 28.83세, 여자 26.02세)에 비해 크게 늦어진 것.
게다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골드미스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눈높이도 크게 높아졌다. 자신의 눈에 차는 괜찮은 이성을 만나기가 그만큼 힘들어진 것. 여성들의 결혼관도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어 마음에 드는 이성이 없으면 굳이 결혼을 고집하지 않는다. 남성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 여러 가지 면을 따지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로 인해 결혼 시장에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 영남대 사회학과 허창덕 교수는 "결혼하기는 어려워지는데 혼자로는 역부족이다 보니 연애 방법을 배우거나 공개적인 만남의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기 침체로 취업이나 직장생활이 한층 어려워진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요즘 20, 30대들은 취업이나 금전 등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급급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을 만나거나 이성을 사귈 기회가 적고, 이로 인해 사람을 대하는 기술도 부족하다. 결국 단기 속성 학습이라는 인위적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취업난이 심하다 보니 여대생들 사이에 아예 결혼을 일찍 해버리는 '취집'(취업하듯 가는 시집) 붐이 생기면서 능력 있는 남성을 만나기 위해 혼활을 한다는 분석이다.
요즘 세대는 과거와 달리 자기계발에 익숙하고 적극적이라는 해석도 있다. 연애도 의사소통의 하나로 여기고 이를 향상시키기 위해 공부한다는 것. 소방공무원 이동욱(28)씨는 "가만히 앉아 인연을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이성을 만나는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그만큼 괜찮은 이성을 만나고 결혼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혼활에 대한 평가
혼활열풍에 대한 인식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우선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현재 조건이나 삶이 어떤 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고치는 계기가 된다. 지난해 혼활캠프에 참가한 이종구(31)씨는 "진정한 나를 알고, 내가 보지 못했던 내 단점을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허창덕 교수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금까지 부모들은 대학 진학과 취업만 강조해왔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어머니를 닮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남편과 부인이 되고 부모가 되는 것은 중요한 사회화 과정이기 때문에 이를 준비하고 연습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경상도 사람들은 너무 무뚝뚝해 연애나 결혼 과정에서 분란이 일어나기 쉬운데 혼활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포장하는 기술을 배우면 유익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있다. 혼활이 너무 상업적으로, 이벤트식으로 흐르다 보면 본연의 모습 이상으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기술적 측면에 치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연애나 결혼도 결국 인간관계인데 취업처럼 스펙에 몰두하다 보면 본래의 의미가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 혼활이란?
일본의 가족사회학자인 야마다 마사히로와 저출산 문제 연구가인 시라카와 도코가 2008년 발행한 저서 '혼활시대'(婚活時代)에서 비롯된 신조어다. 혼활(婚活)은 '결혼활동'의 줄임말로, 때가 되면 결혼을 하는 시대는 지나갔으니 이제는 취직을 준비하듯 더 좋은 결혼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시사용어집에 실리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혼활을 코치하기 위한 전문강사가 생기고 전문 바(bar)가 성행하고 있다. 또 결혼정보회사에 보다 좋은 조건으로 가입하기 위한 스터디 모임까지 생겼다. 맞선에 나서기 꺼리거나 시간에 쫓기는 미혼남녀를 위한 부모의 대리맞선, 대화거리가 없는 이들이 애완동물을 동반하는 펫(pet)미팅도 성황이라고 한다.
전창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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