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교직은 영원한 청춘

입학과 진급을 한 지 2주가 흘렀다. 여전히 온갖 기쁨이 충만하고 활기차다. 교정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박웃음은 봄 풍경의 백미라는 투의 한가한 소리는 일단 접어두자. 그리고 교무실을 들여다보며 조금은 우울하자. 교사, 학부모, 아이들 모두 함께 웃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

교직 사회에서는 55세부터 원로교사 대접을 한단다. 그런데 실상은 '경로 우대'다. 곤란하며 글로벌 경쟁시대에도 맞지 않는다. 어느 사회, 어떤 조직이든 '그들만의 논리'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난 정체불명의 괴집단이 아닌 이상 세상 돌아가는 것도 살피고 보폭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일본에선 1980년대 중반 노령화 사회를 맞아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실년(實年). 그 유래는 이렇다. 성인을 연령대별로 청년, 중년, 장년, 노년으로 구분하여 왔고 60대부터는 노년에 속했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적어도 70은 돼야 노인 축에 들게 됐다. 그래서 50대 장년과 70대 이후 노년 사이의 60대를 실년이라 불렀다. 연륜과 경륜이 녹아든 결실의 시기라는 의미로.

우리나라에서도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나돈 지 꽤 되었다. 또 중국 속담에는 '나이와 한 패가 되지 말라'고 해 연령의 한계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했다. 여담이지만 맥아더 원수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나이는 70대 초반이었다.

이러한 추세로 비춰볼 때 나이만을 기준으로 원로라고 칭하는 것은 지나친 미화인데다 50대 중반을 세월의 마디로 여길 그 어떤 기준도 명분도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교직 사회 내부적으론 자식뻘의 초임 교사에 비하면 어른 대접 정도는 받을 만하다. 하지만 자녀를 학교에 맡긴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사 나이 나름의 기대치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경로우대 풍토가 본업인 수업에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의욕과 열정을 지닌 교사들의 새로운 시도를 북돋우고 동화되기보다는 마뜩잖게 여기며 하향 평균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런 악습을 은연중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교직은 고여 있는 물과 같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 왜 아직 교단에 서 있는지를 실력이나 관록으로 증명하면 된다. 그래도 분발의 수고가 버겁다면 달리 여생을 꾸리는 게 제자들의 장래를 봐서 차라리 교직자다운 선택이 아닐까? 교직은 세월이 흐른다고 기업체처럼 단계적으로 직위가 올라가는 집단이 아니다. 그 참뜻은 영원한 청춘이자 일관된 현역이어야 한다. 평생 젊게 사시라는 게 얼마나 덕담인가!

김 일 부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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