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메딕(Medic)이라 불러주세요."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상처를 치료해주는 메딕(간호장교)에 빗대 자신을 소개한 영천의 육군3사관학교 박한규(40) 대위는 13년차 간호장교다. 전국 간호장교 800여명 가운데 남자는 33명이 있지만 단기 군 복무자를 제외하면 박 대위는 대구경북 유일의 남성 간호장교다.
박 대위가 처음부터 간호장교가 되려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하다 군대 시절 의무병으로 복무한 게 인연이 됐다.
제대 후 아르바이트 자리를 물색하던 박 대위는 상주적십자병원에 다짜고짜 쳐들어가 "의무병으로 제대했는데 어떤 일이든 달라"고 했다.
"무슨 배짱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병원에서 일자리를 주더라고요. 격무에 시달리다 오래잖아 그만두는 사람들을 많이 봐온 탓에 반신반의하며 응급실로 배치한 거예요."
한달 정도 일했을까. 응급실에서 그의 인생 행로를 결정짓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인 한분이 길에서 사고를 당해 실려왔다.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박 대위는 노인 곁에서 응급 치료를 도왔다.
생사를 드나들던 노인은 갑자기 눈을 떠 박 대위에게 "객사하면 집에서 장례를 못 치른다. 꼭 집에 가서 죽어야 된다"고 했다. 박 대위는 "생사를 오가던 그 노인이 살아나 걸어서 집에 가시게 됐다"며 "그때 이 길이 내 길이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그 후 1년간 응급실과 정형외과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박 대위는 다니던 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다시 대입시험을 쳐 간호학과에 들어갔다. 110명의 동기생 중 남자는 박 대위가 유일했다.
박 대위는 1997년 11월 시험을 치르고 이듬해 4월 간호후보생으로 육군3사관학교에 입소했다. 혈기 왕성한 남자 사관생도에겐 때론 정신적 상담도 필요해 박 대위의 존재는 더 빛난다. 여성에게 보이기가 쑥스런 질환인 경우 박 대위를 찾는다. 선임인 김은숙 소령은 "남자라고 해서 딱히 더 뛰어나기보다 훈육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박 대위에게도 고민은 있다. 남자 간호장교는 숫자도 적어 진급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43세면 계급 정년이다. 박 대위는 "아픈 이들에게 필요한 약손이 되는 게 원래 목적이었기 때문에 현실에 충실할 뿐"이라며 "제대 후에도 국제적십자 활동 등 어디서든 필요한 곳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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