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동필(55) 선임연구위원 겸 농업농촌정책연구본부장의 별명은 '도시의 농사꾼'이다. 빌딩숲 속에서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한참 생각했다. 한 시간 반 가량의 인터뷰를 끝낼 즈음 반드시 호미·낫을 들고 하는 것만 농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30여 년간 농업정책에만 매진한 농촌경제의 선구자적 면모에서 농사꾼 이상의 기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본부장은 "농촌 사랑은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6년 그가 처음 도입한 '6차 산업' 개념은 단적인 예이다. 농업은 더 이상 작물 농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가공 등 2차 산업과 유통·관광 등 3차 산업 요소들이 결합된 복합 산업, 즉 '1차+2차+3차=6차'산업이란 주장이다. 최근엔 '1차+2차+3차'라는 더하기 공식 대신 '1차×2차×3차' 곱하기 공식을 강조한다. 농업(1차 산업)이 하향길로 들어서 '0'이 될 경우 '5차'가 아니라 제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연구의 집약체로는 15년을 투자한 전통주 진흥 방안이 꼽힌다. 지난해 8월 청와대가 채택해 지원의 근간을 마련한 '우리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 이 본부장의 작품이고, 오는 8월부터 시행되는 '전통주산업진흥법'(정해걸 국회의원 대표발의)의 아이디어도 그가 제공한 것이다.
최근엔 인기가 급상승 중인 막걸리 연구에 한창이다. 경북의 막걸리 산업은 규모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에는 장수막걸리라는 브랜드 1개만 있습니다. 조합 형식의 공동체 성격을 띠는 이 브랜드는 이미 공장만 7개를 거느리는 대형업체로 발전했습니다. 반면 경상도의 경우 70여개의 막걸리가 있고 경북 의성에만 13개가 있습니다. 막걸리 공장이 가내 수공업 식으로 진행되는 셈입니다. 이런 곳에서 대형 유통망 구축과 연구·개발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참을 걱정하던 이 본부장은 "하지만 막걸리의 80%를 차지하는 물이 좋은 곳이 바로 경북"이라며 지역의 경쟁력도 언급했다.
그는 의성의 고추 농사를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했다. 우연한 기회에 의성 고추의 유통경로를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심고, 기르고, 수확해 말리는 것은 경북 몫이고 '살짝' 가공해 고추장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누리는 곳은 순창 등 다른 곳이었다. 순창고추장으로 맛을 더한 전주비빔밥은 매출의 0.3%를 전주시에 로열티로 제공하는 등 의성 고추는 다른 지역의 수익을 더 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도 하루 빨리 톤(t) 단위로 판매하는 지역의 농산업 구조를 고추장처럼 그램(g) 단위로 판매하는 구조로 변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생산·가공·유통 등 산업화는 불가피합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에 따르면 경북에서 생산되는 쌀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경북의 쌀은 경기도 이천 등 수도권의 쌀과 비교해 경쟁이 되지 않을 정도의 낮은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쌀 자체로 승부를 걸지 말고 자연경관과 풍부한 역사, 문화자원을 배합해 술과 떡으로 만들고 이를 활용해 관광객을 유치함으로써 제 값을 하게 해야 합니다."
경북이 농업을 특화할 수 있는 방안과 관련해선 농산업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귀띔했다. 이 본부장이 제도적 근간을 만들어 현재 지렁이와 곤충도 축산업에 포함된 상태이다. "경북의 농축산물 범위를 타조, 오소리, 지렁이, 곤충 등으로 확대하고 정부의 농공단지 정책을 활용해 농가소득을 확산시키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본부장은 농촌 발전에 대한 열정 때문에 35년 전 집에서 쫓겨난 일을 기억했다. 영남대 축산경영학과 졸업 이후 농사를 지을 계획이었으나 대학까지 나온 맏아들의 귀농이 못마땅한 부친으로부터 출가 조치된 것이다. "문전옥답을 버리고 그동안 도시에서 농촌만 생각했습니다. 5년 뒤에는 진짜로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 후배들과 만나 농촌의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정년이 5년 가량 남아 있는 이 본부장은 모친이 계신 의성을 그리워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 본부장은 의성군 단촌면 출신으로 단촌초, 안동중, 대구고, 영남대를 졸업한 뒤 미국 미주리대에서 농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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