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1기 3차회의가 5일부터 14일까지 열렸다. 개막일 원자바오 총리는 '정부업무(工作)보고'에서 2010년도 정부업무추진 안을 발표했다. 전체적인 내용과 목표는 예년과 대동소이했으나 한가지 새로운 목표가 제시됐다. "백성들의 삶이 더 행복하고 존엄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존엄'이라는 용어가 고위 정치인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정치 논제화되면서 중국 언론계'학계 그리고 정치계는 열띤 논의를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현재 농업세 폐지'의무교육 실천'농촌합작의료제도의 도입'그린카드제 확대'부패관료 처단 등 각종 개혁을 통해 소득분배 불균형과 사회보장제도 미비로 인해 일반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 성과는 아직 만족할 만하지 못하다. 오히려 관료주의는 더 만연하고 백성들의 냉소주의는 더 팽배해지고 있다.
이러한 실상은 신종 유행어 몇 개와 최근 사건 한두 가지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집 노예'(房奴)는 제 집 장만에 목매는 사람을 칭한다. 두 쌍의 집 노예들의 애환을 중심으로 그린 드라마 '달팽이집'(蝸居)은 시청률 1위를 기록하였다. 베이징시 근교 탕지아링에 하나 둘씩 모여든 청년 실업자들에게 붙여진 '개미족'(蟻族)이라는 표현은 이제 '고학비로 부모 등골 빼서'(賴校族) 졸업하고도 백수가 되어 귀향하지 않고 도시 주변부에 기거하며 꿈과 현실 사이에서 번뇌하는 젊은이를 통칭한다. 선전시에서 여아를 성희롱한 모 고관이 아이 부모에게 "이 방귀만도 못한 인간이 감히 내게 덤벼?" 하며 호통 친 데서 유래한 '방귀백성'(屁民)은 권력도 돈도 없는 평민을 뜻하는 유행어이다.
지난 2월 광시성 모 국장의 일기 사건은 엽기적이다. 그가 술접대 받은 내역과 여성 6명과의 성 행각, 그리고 뇌물 수수 내용을 낱낱이 기록한 일기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다. 그 국장은 파면되었지만 관련 여성들의 신상명세는 지금도 인터넷에 떠 있다. 중앙연극대학 곳곳에 '세컨드 모집' 광고가 나붙은 일도 있다. 1980년생의 한 벼락부자가 자신이 내건 일곱 가지 조건에 맞는 여성이면 하루에 2천 위안씩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노예'개미'방귀'세컨드 모두 인간의 존엄성과는 거리가 먼 표현들이다. 성 상품화 대상인 여성들, 배경 없어 취업 못 하는 청년들, 거리로 내몰리는 철거민들, 도시빈민인 농민공들 모두 사회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세태 속에 '존엄'을 논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전국인민대표들은 회기 동안 '존엄'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 '의식주 해결이 존엄의 전제이며, 공평공정은 존엄의 실천방법이고, 자아 실현이 존엄의 최고 수준'이라는 총론 수준의 해석을 내놓았다. 원론적이고 추상적이라 그런지 이에 대해 일반 백성들은 별 반응이 없다. 그러나 국민의 최대 민생 문제인 주택 사안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존엄은 분수에 맞게 사는 것으로, 10평짜리에 살아도 존엄하다"고 한 모 대표나 "가난한 사람이 집을 사려는 것은 사치이니 마음 편하게 세사는 것이 존엄이다"라고 한 다른 모 대표는 백성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두 대표는 돼지의 존엄을 논하고 있다며, "거지 취급받지 않고, 철거 위협 없고, 임시거류증 없이도 살 수 있으면 존엄해진다"고 항변한다.
정책입안자들과 보통시민 사이에는 존엄에 대한 해석과 방법론에 있어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전자는 당사자의 마음가짐에 중점을 두며, 후자는 사회제도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정부는 동기부여 정책 시행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백성들의 정신교육을 통해 스스로가 창의성을 개발토록 함으로써, 매슬로(Maslow) 욕구 단계의 최고 수준인 자아실현을 이루도록 할 것 같다. 반면에 백성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모욕하고 있는 사회 제도들을 주도적으로 개선해줘 마갈릿(Margalit)이 말한 '품위 있는 사회'에 살면서 '체면(面子)'을 유지하고 싶어할 것 같다.
14일 '정부업무보고'가 97.8%의 찬성으로 통과되었으니, 중앙 정부는 거시적 방안을 마련하고 각 지방 정부는 이에 준하여 실행계획을 준비할 것이다. 중국 정부가 힘없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잘 담아내 존엄성을 찾아주길 기대한다.
조수성 계명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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