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청와대의 귀한 손님

산으로 둘러싸인 청와대에는 계절의 변화가 더디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산 아래 동네, 광화문 일대에 비해서도 그렇다. 경복궁 뒷담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들도 조만간 화사한 꽃망울을 터트리겠지만 도심보다는 일주일 정도 늦을 터이다.

좋은 점도 물론 있다. 산 속이라 공기는 맑고, 귀한 손님(?)들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 눈을 즐겁게 해주곤 한다. 지난해 봄에는 천연기념물 원앙새 한 쌍이 렌즈에 포착됐고, 며칠 전에는 '춘추관'(기자동) 마당 소나무에서 딱따구리가 먹이를 찾았다. 어찌 보면, 매일같이 인사를 전하는 이름 모를 산새며 청솔모, 다람쥐가 이곳의 진짜 주인일지도 모르겠다.

청와대는 사실 '세입자' 물갈이가 5년마다 이뤄지는 특이한 동네다. 450명 정도인 직원 대부분이 정권 교체에 따라 새로 짐을 풀거나 싸야 한다. 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엔 귀에 익은 사투리가 예전보다 많이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고향 까마귀'를 실제로 보기란 좀체 쉽지 않다. 청와대 본관, 위민관(비서동)과 춘추관 사이에 '소통의 벽'(담)이 있어 왕래가 차단돼 있기도 하지만 울음소리마저 듣기가 어렵다. 국정에 바쁜 탓이거니 자위해 보기도 하고 선진일류국가를 만드는 데 그깟 초록동색(草綠同色)이 대수일까 하며 어리석은 자문자답을 해보기도 한다.

때론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이 같은 '불만'이 담장 너머로 전해져 안타깝게 한다. 지역 출신 한 관계자는 "우리끼리 식사 때 했던 이야기가 며칠 뒤면 소문이 파다하다. 내부에 스파이가 있는 게 아니냐며 서로 오해를 한 일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타 지역의 경우 인근 시'군끼리도 함께 모이는데 TK는 그런 일이 없다. 정부 출범 후 새로 생겼던 모임도 흐지부지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 출신이란 점이 오히려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고'소'영' 'S라인'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만큼 지역이 앞장서서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충성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이야기다. "오로지 결과로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는 대통령의 철학에 따라 사사로운 감정은 배제한 채 업무에만 충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에선 대구경북의 역사'지형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산과 골짜기를 따라 이곳저곳에 떨어져 살아온 탓에 연대감을 느끼는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다는 풀이다. 조선 중기 이후 중앙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홀로 독야청청해야 했던 영남 선비들의 정신이 계승됐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뭉치지 못하는 것은 지역도 마찬가지다. 정부 부처 한 고위 관계자는 취임 후 자신을 찾아온 대구경북 공무원이 손으로 꼽을 정도라고 했다. 오히려 다른 지방만큼도 안 오면서 어디어디는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고 욕할 게 없다는 것이다.

패거리문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이 국가 단위를 넘어 세계와 경쟁하는 '평평한 세계'(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의 저서)에서 지역패권주의는 봉인돼야 마땅하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은 대구를 찾아 "분지형 사고를 버려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힘을 합쳐서 한 번 발전시키자는 합심된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앞선 대구경북 방문은 물론 어느 지역에서도 하지 않은 '직설화법'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더욱 빨리 버려야 할 것은 '분지형 인간관계'가 아닐까.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이라 불렀던 지역이, 지금도 수재 많기로 첫손에 꼽히는 지역이, 20년 가까이 1인당 지역내총생산 전국 꼴찌가 된 데는 필경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서울에 있든, 대구에 있든, 저 멀리 제주도 아니 해외에 있든 지금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상헌 정치부 차장대우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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