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속 무한 경쟁시대를 예견하며 우리 사회에 등장한 여러 가지 현상 가운데 영어 학습 열풍만큼 학생과 학부모 함께 매달려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아이들이 말문을 트기만 하면 조기 영어 교육의 장점을 들어가면서 부모들은 경쟁적으로 영어환경에 노출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방학이 되면 영어권 나라로, 원어민 선생을 찾아 떠나기 바쁘다. 이미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학부모조차도 더 잘 가르치는 어린이 어학원이 없을까 살피고 있다. 자녀들의 영어 교육지도를 위해 어머니들이 직접 영어학원에 가 수강하면서도 불안해한다.
성인들도 직장에서 운영하는 영어교실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 있고, 사회에서도 영어 사교 모임이 만들어져 영어 말하기와 독해 실력을 쌓으려 노력하고 있다. 영어 배우기 열풍 속에 휘말려 있는 우리 사회를 뒤돌아보면 짚고 넘어가야 할 그 무엇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반성은 한국인보다 오히려 영어를 가르치러 온 원어민 교사들의 객관적 충고 속에서 종종 발견되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리타 타일러(Rita Taylor)라는 캐나다 출신 영어교사는 지난해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의 자연을 느끼며 소개한 저서 '산속의 향기'(Mountain Fragrance)에서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다.
'영어를 배우려는 나라가 많아 영어가 세계 문화 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전 세계인 모두가 영어만 쓰는 시대가 온다면 획일적인 언어문화를 통하여 영어의 식민지가 되어 얼마나 단조롭고 서글픈 세상이 될 것인가. 또한 영어 자체의 위상도 인류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상업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어 영어 자체의 고유한 문화의 품격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영어 배우기를 놀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날 것이며 아이들에게 영어 배우기가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영어 배우기가 한낱 생존경쟁 도구로 전락하는 동안 한창 모국어를 익히고 모국어가 가진 오묘한 뜻을 새겨야 할 때를 놓치고 있지 않은가 되돌아볼 때다.'
영어 배우기에 앞서 자연 속으로 아이들을 풀어 놓아 광대한 하늘이 주는 메시지, 새들의 대화, 꽃과 나무들이 전해주는 언어, 때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음성을 듣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영어 학습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각종 과외 시간으로 내몰려 정신 차리기 힘들 지경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의 정서는 메마르고 심성이 거칠어지고 반항적이 돼 세상의 모든 것은 경쟁의 대상으로 파악한다. 조그만 일에도 쉽게 화를 내며 자존심이 강해져 어른이 돼도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 형성돼 툭하면 싸우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고만고만한 영악한 소시민들만 양산될 뿐이지 뛰어난 큰 인물이 나타나기 힘들어진 요즘 세태다.
예로부터 큰 산 아래에서, 넓은 광야에서 큰 인물들이 태어났다. 지금의 삭막한 시멘트 공간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옛날 시골에서 자라면서 얼어붙은 샛강에서 앉은뱅이 썰매를 타며 젖은 옷을 말리다 모닥불에 바지를 그을려 어머니에게 야단맞던 추억들, 흘러가는 시냇물에 고무신 한짝을 떠내려 보낸 후 아쉬워하면서 어른들에게 혼날까 맘 졸이던 시절들이 새삼 정겹게 생각난다.
지난 설날 세배하러 왔던 여섯살배기 손자가 집을 떠나며 씨유 투모로우, 씨유 어게인, 바이 바이, 굳 나잇(see you tomorrow, see you again, bye bye, good night) 하며 인사를 하였다. 손자는 영어 이름을 하나씩 지어야 하는데 간단하면서 강력한 뜻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또한 본인의 마음에 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주장하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자라서 어떠한 추억을 간직하게 될까. 승용차 타고 피자 먹으러 가던 일, 자동 유리문이 달린 아파트, 손에 휴대전화기를 잡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게임 중독에 빠져 허리가 휘어지고 시력이 나빠져 안경 낀 아이들의 수는 늘어만 가고…. 오호라, 이 문제들을 어찌할꼬. 남의 일처럼 그냥 보고 지나가면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을 자연 있는 그대로 보고 자연에서 배우게 하려고 일가족 모두 데리고 두메산골로 내려간 평범한 어느 가장이 생각나는 시절이다. 우리 아이들은 더욱 야생화처럼 키워야 한다.
윤성도 계명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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