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중생 성폭행·살해 피의자인 김길태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다 14일 갑자기 흔들렸다. 그를 코너로 몬 것은 베테랑 수사관도, 프로파일러(법죄심리분석관)도 아니었다. 흉악범을 꼼짝 못하게 한 것은 '거짓말탐지기'였다.
김은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이양을 살해한 곳으로 추정되는 한 장소의 사진을 보고 '모른다'고 답했지만 호흡과 맥박이 갑자기 빨라지면서 탐지기 그래프가 요동쳤다. 이후 경찰은 그래프 변화상을 보여주며 압박했고, 마침내 15일 자백을 얻어냈다.
거짓말탐지기 수사가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김길태 사건에서 보듯 범행을 전면 부인하거나 물적 증거가 없는 범죄의 진실을 가려내는데 거짓말탐지기 활용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의 오류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신뢰성 시비도 끊이지 않고 있다. 1, 2%의 오류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무죄가 유죄로, 유죄가 무죄로 뒤바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탐지기의 '진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거짓말탐지기 활용건수는 277건으로 2007년(172건)에 비해 61%나 급증했다. 경찰은 "당사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할 수 없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는 경우에 한해 거짓말 탐지기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8년 만에 붙잡힌 대구 사채업자 암매장 살해범은 경찰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앞두고 갑자기 잠적했다. 경찰은 "피의자 잠적은 범행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채무 관계와 주변 인물에 대한 조사 수위를 높여 범행 일체를 자백받고 피해자 시신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피의자들은 거짓말탐지기 조사에 앞서 갑자기 범행을 자백하기도 한다. 대구경찰청 경우 지난해 검사 직전 자백건수가 15건이었다.
국내외 학계가 추산하는 거짓말탐지기의 정확도는 92∼98%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검찰이 2000∼2004년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피의자 진술이 거짓말로 나타났다'며 기소했던 1천261건 중 법원이 유죄 확정 판결을 한 형사사건(재판 진행 중 사건은 제외)은 1천165건에 달해 일치율 92.4%를 기록했다.
거짓말탐지기는 케이블TV의 진실게임 퀴즈쇼에 등장할 만큼 대중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미국 인기 프로그램의 형식을 들여와 한국판으로 제작한 이 퀴즈쇼는 진실만을 답하면 상금 1억원을 주는 프로그램. 퀴즈쇼 거짓말탐지기는 1990년대부터 검찰청의 주장비로 선택돼 현재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라피엣사의 LX-4000기종이다.
◆거짓말탐지기의 '거짓'
1985년부터 옛 소련을 위해 일했던 미 중앙정보국(CIA)의 이중스파이 에이메스는 1994년 2월 검거되기까지 두 차례나 CIA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무사히 통과했다. 그는 거짓말탐지기 무사 통과 방법을 묻는 조사관에게 "그냥 편안하게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거짓말탐지기의 정확성을 지적할 때 자주 등장하는 에이메스의 오류는 국내 판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껏 국내 법원에서는 거짓말탐지기의 직접적 증거 능력을 인정한 전례가 없다. 단지 1, 2%라도 그날의 생리 변화와 검사를 받는 사람의 성격과 진술 내용에 따라 거짓말탐지기 결과가 달리 나타날 수 있기 때문.
변호사들 역시 "부정확한 검사 결과로 억지 자백을 끌어내려는 수사기관의 잘못된 관행"이라며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비판하기도 한다. 오류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억울하게 혐의를 뒤집어쓰는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에 대한 수사기관의 '신뢰'는 여전히 높다. 경찰뿐 아니라 검찰에서도 자주 쓰이며 해마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법원에서도 판단 자료로 종종 활용하는 추세"라며 "당사자 진술 외에 객관적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사건 수사에서 거짓말탐지기만큼 유용한 수단은 없다"고 말했다.
☞거짓말탐지기
호흡 속도, 땀 분비량, 맥박·혈압 변화 등을 동시에 기록하는 장치를 통치하는 '폴리그래프'(polygraph·다용도기록계)의 하나. 고의로 거짓말을 하려고 할 때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발생하는 신체적 변화를 통해 거짓말을 가려낸다.
이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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