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불평등 축소 방안을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40년 동안 우리 머리를 지배해온 '선성장 후분배' 철학을 이제는 폐기해야 한다. 분배와 성장이 동행한다는 인식, 분배를 통한 성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인식을 가질 때가 됐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경제적 양극화, 불평등, 빈곤 등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엄청나게 늘어나 지금은 거의 폭발적 수준에 가깝다" 며 "우리나라는 마치 천하대란의 형국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한국사회의 분배에 관한 호의적 평가와 이를 뒷받침할 만한 통계자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불평등하다고 믿는 성격과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1960년대 초 이래 우리나라가 취한 경제성장 전략의 특징은 수출 주도형 또는 외향적 공업화다. 이런 전략이 고용증대, 그것도 주로 저소득층 고용증대를 가져왔으며, 소득분배의 개선에 끼친 기여도 무시할 수 없다. (중략) 그러나 한국이 추구한 외향적 공업화 전략은 대내적으로 아주 심한 불균형성장 전략이었다. 즉, 농촌보다 도시, 농업보다 공업,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편파적으로 지원, 강화하는 것이었고, 또한 특정 지역에 공업시설이 집중되는 경향을 강하게 보여주었으며, 그 과정에서 지역 간, 부문 간, 기업 간 불평등이 심화되어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공업화 과정에서 대규모의 이농(離農)이 이루어지는데,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유별나게 빨랐다. 이런 이농 과정은 소득분배를 불평등화하는 방향으로 변화시켰다. 농촌에 비해 도시 소득수준이 높다는 게 하나의 이유고, 농촌에 비해 도시의 소득분배가 상대적으로 더 불평등하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이유다. 1960년대 초 또는 그 이전의 소득분배 상태에 관해서는 믿을 만한 통계자료가 없어서 확인할 수 없으나, 30∼40년 전과 비교한다면 분명히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셋째, 경제개발 초기에는 국민들의 관심이 성장에 쏠리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분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불평등에 대한 참을성도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중략)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만은 이런 심리를 '경제가 발전되는 초기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것을 보고 자기도 머지 않아 돈을 벌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고 다른 사람들의 부의 축적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자신은 가난을 면치 못한다면 사람들의 참을성은 분노로 바뀐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60년대와 70년대의 고도성장 초기에 서민대중이 보여주었던 인내심이 1980년대 이후에 한계에 도달했고,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팽배해졌다.
넷째, 우리나라 재벌들은 대개 정부의 각종 특혜와 지원에 힘입어 아주 단기간에 면모를 일신한 벼락부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부의 축적에는 근검, 절약, 노력, 창의와 같은 요인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소위 정경유착에 힘입어 단기간에 손쉽게, 그리고 정당하지 못한 수단까지 동원해 획득한 부분이 있다. 게다가 벼락부자인 그들의 생활이 호화주택과 고급 승용차, 외제 사치품으로 치장한 특수층이란 점이 다섯째 근거다.
여섯째, 최근 들어 한국 사회의 이동성이 약화된 측면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즉, 경제개발 초기만 하더라도 혹시 입지전적인 인물이 있어서 별다른 상속재산도 없고, 뾰족한 학벌 없이도 벼락부자가 되는 일이 더러 있었다. 지금 한국의 재벌에 들어가는 그룹들 중에는 이런 유형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그와 같은 서부 개척시대적인 기회는 점차로 봉쇄되어 가는 느낌을 준다.
일곱째, 어느 정도 부가 축적되면서 돈이 돈을 버는 식의 불로소득 집단이 우리 사회에도 나타나고 있다. 유한계급의 상당한 출현은 열심히 일하는 데도 불구하고 만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저소득층의 노동 의욕과 생활 의욕을 해친다.
여덟째, 사회학에 준거집단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국의 준거집단을 든다면 아마 동북아시아 지역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다른 후진국에서 좀처럼 실시되기 어려운 토지개혁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연쇄적으로 이뤄졌고, 소득분배도 비교적 평등한 편이다. 따라서 우리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등한 소득분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남미의 극심한 소득불평등을 보면서 위안을 얻기보다는 이웃나라들에 비해 훨씬 불평등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지은이가 파악한 대로 위와 같은 이유로 한국인들이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이론적 근거가 약해 보인다.)
이정우 교수는 "유독 한국에서는 성장만 중시되고, 분배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제 고도성장 시대는 끝났고, 분배 복지 문제를 돌보지 않고는 성장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성장만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지양하고 보다 폭넓은 균형 잡힌 시각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그럴까? 우리나라 학자들이나 일반인이 유독 '성장'만 중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성장'만 중시했다면 지금과 같은 광범위한 중산층의 확산, 여가, 휴가 등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자본주의 경제는 분배 없는 성장이 불가능한 구조다. 거칠게 말해 월급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대량 소비자가 나오지 않았다면 대량생산 및 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은이는 한국의 분배정책의 방향으로 '노동조합의 활성화, 기업공개와 종업원 지주제의 확대, 임금격차 축소, 부 및 불로소득 중과세, 서민주택 개선, 교육제도 개혁, 사회보장의 확충' 등을 들고 있다.
지은이 이정우 교수는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참여정부 시절 2년 반 동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으며, 성장과 분배의 동반추구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이 책은 강단에서 30년을 가르쳐온 '불평등의 경제학'을 묶어낸 것이다. 520쪽, 2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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