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어린 소녀를 위한 기도

지인에게서 구피를 분양받았다. 암컷 두 마리와 수컷 세 마리였다. 발정기가 되자 수컷은 멋진 지느러미와 꼬리를 흔들며 암컷에게 구애를 하기 시작했다. 암컷 중 한 마리는 다른 한 놈보다 작았다. 몇 개월은 더 자라야 성어가 될 것 같다. 나는 그놈을 위해 어항 하나를 따로 준비했다.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았다.

고래생태체험관에서 성적 스트레스 때문에 의문사한 돌고래에 관한 기사를 읽은 직후라서 더 그랬다. 폐사한 암컷 돌고래는 아직 발정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는데 수컷이 무리하게 쫓아다니며 스트레스를 준 게 원인이었다. 암컷 돌고래는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되기 전의 소녀였던 것이다. 생식기 주변의 이빨 자국으로 보아 죽기 직전까지 수컷에게 쫓겨다니며 공격을 받아온 걸로 보인다.

며칠 전 어린 소녀가 성인 남자에 의해 그렇게 사라졌다. "안경을 안 끼면 사물을 분간하기 힘들 만큼 시력이 나빠요." 그 말을 하며 소녀의 엄마는 울음을 터뜨렸다. 소녀에게 어떤 급박한 상황이 닥쳤는지 안경은 말해줄 수 없었다.

안경 없이 바라본 세상은 소녀의 미래만큼이나 흐릿했을 것이다. 범인의 얼굴은 물론 주인이 버리고 떠난 빈집들조차도 소녀에겐 포효하는 짐승이었을 것이다. 살려 주세요, 외쳤을 텐데, 그 간절하고도 절박한 신호를 받기에 우린 너무 멀리 있었다.

소녀는 도시 속 섬이었다. 그 시간에도 비행기는 밤하늘을 날고, 열차는 철로를 달렸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우리는 없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나는 없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소녀만 있었다. 하늘의 별과 달도 눈과 귀를 닫았다. 무거운 세상만 있었다. 소녀의 작은 손과 발로 감당하기에 그것의 무게는 지나치게 컸다. 누군가 무게를 덜어주었어야 했는데 도시의 네온사인은 스스로를 빛내기에 바빴고 교차로의 자동차들은 경쟁적으로 달렸다.

결국 소녀는 물탱크 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이었다. 소녀의 시간들이 바닥으로 똑똑 떨어지는 순간에는 무심했던 입들이 각자의 생각을 켜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주지 못해, 여린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 듯해 명치끝이 저리다.

13년이 그렇게 어이없이 요약되었다. 어항 속을 바라본다. 성어를 꿈꾸는 구피가 물속을 유영한다. 다음 생엔 소녀도 위험이 차단된 안전지대에서 자유롭고 밝게 유영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임수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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