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희(55·여·경산시 진량읍)씨는 27세인 딸 연지(가명)와 단둘이 살고 있다. 20여년 전만 해도 남편과 아들딸 네 식구가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지만 이후 끝없는 불행이 모녀에게 닥쳐왔다.
몸이 많이 아픈 신씨와 어머니 간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연지 모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서로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는 일밖에 없다.
가슴에 묻어둔 남편과 아들을 생각하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사진 한 장 남겨놓지 않고 모두 태워버렸건만 그래도 이들의 얼굴은 모녀의 가슴에 살아남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고 있다.
◆남편의 죽음
신씨의 불행이 시작된 것은 1989년 결혼 8년째.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혁준이는 사법시험 2차에 합격하고 한숨 돌리던 아버지와 함께 두류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하지만 이 봄나들이는 하루아침에 신씨의 집안을 풍비박산 내고 말았다. 길을 건너다 봉고차에 부딪혀 넘어진 후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남편과 아들을 영업용 택시가 또 한번 친 것이었다.
남편과 아들은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남편은 입원 19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신씨는 "뇌를 다친 혁준이의 상태가 심각해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에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며 "이제서야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때 남편만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족 인생이 이렇게까지 비참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했다.
신씨는 사고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봉고차와 택시가 서로 책임을 미루며 5년 넘게 법적 다툼을 계속했고, 그동안 신씨는 여기저기 돈을 꿔가며 혁준이의 병원비를 마련해야 했다.
◆아들의 사고
자식들과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쳤던 신씨는 봉제공장 등을 전전하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하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사고 후유증을 극복하고 착실하게 학교 생활 잘하던 아들 혁준이가 1995년 상인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당시 대건중학교에 다니던 혁준이는 아침 등교를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중 날아든 복공판에 머리를 부딪혀 세상을 떠났다.
신씨는 "어떻게 살려놓은 내 아들인데, 그렇게 어이없는 사고로 잃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그 때 이후로는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삶이 돼 버렸다"고 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신씨는 집과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도망치다시피 대구를 떠나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증을 잘못 서 그나마 혁준이 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돈과 집, 보험과 저축 등 모든 재산을 날리게 된 것. 신씨는 "갈 곳이 없어 떠돌다 경산의 한 시골집에서 지내게 된 것이 벌써 8년 전"이라고 했다.
신씨는 이후 하루하루를 어떻게 연명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신씨는 당뇨병으로 아예 일을 할 수 없는 신세가 됐고, 당시 막 대학에 입학한 딸 연지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포기하고 말았다.
◆또다시 닥친 병마
신씨는 수년째 당뇨병을 앓고 있었지만 병원비가 부담이 돼 방치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여름 몸에 이상을 느꼈다. 가슴에 이상한 멍울이 만져져 '혹시나'하는 생각을 했지만 병원비 한 푼 마련할 수 없는 살림이라 무심히 넘기고 말았다.
하지만 올 초 이상하게 심한 피로감이 지속돼 병원을 찾아갔더니 암덩이가 깊숙이 퍼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현재 신씨는 유방암 절제술을 받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있지만 수백만원의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형편이다.
딸 연지도 몸을 혹사해 알 수 없는 두통과 실신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씨는 "딸이 지난해 여름 마트 계산원으로 일을 하다 쓰려져 응급실 신세를 졌었다"며 "정확하게 무슨 병인지 알면 치료라도 하겠지만 검사비만 수백만원이라 손을 놓고 있다"고 했다.
아들과 남편, 희망 모든 것을 잃고 살아왔던 신씨. 하지만 "끝까지 유방암과 싸워 이겨야 한다"며 이를 악물었다. 신씨는 "더 미련도 없는 세상 살아서 뭐하나 싶다가도, 아버지와 오빠를 잃고 힘든 삶을 살아온 딸에게 또다시 엄마 없는 설움을 당하게 할 수는 없다"며 "어떻게든 참고 견뎌 딸이 시집이라도 가는 모습을 봐야 한다"며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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