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부의 취미가 경쟁력이다

빵 굽고, 재봉틀 박고, 반찬 만들었더니 주변서 "사고싶다"

대구 동구에 '대박가게'들이 떴다. 동부여성문화회관 강좌 수강생들이 10일부터 12일까지 처음 운영한 '디딤돌 동부 장터' 이야기다.

장을 연 장꾼들은 생활도예, 홈패션, 베이커리 등 7개 분야를 취미삼아 공부해온 113명의 주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내놓은 물건들은 장터 운영 첫 날 절반 이상 팔리면서 대박의 빛을 발했다.

홈패션을 배운 주부 10명은 앞치마, 쿠션, 손수건 등 저마다 주특기 물건들을 내놓았다. 장터 마지막 날 매장 물건에는 아예 '견본품'이란 딱지가 붙어 있었다. 워낙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주문만 받아놓고 팔지 못한 물건들이다. 주문 사항도 제각각. 가방의 끈을 길게 해달라, 특정 색깔로 만들어달라는 등 사람들은 저마다 취향으로 주문했다. 어떤 주문도 OK. 회원들은 10년 가까이 공업용 재봉틀로 홈패션을 연마해온 베테랑들이기 때문이다.

7년째 홈패션을 배우고 있는 김영주(45'대구 동구 복현동)씨는 "지금까지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만 해왔는데, 판매해본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손님이 과연 올까 걱정했지만 개장 첫날 불티나게 팔려서 회원들이 집에 아껴둔 물건들까지 모조리 가져와야 했어요." 한미경(45'동구 신암동)씨도 손님을 맞느라 분주하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고 첫 사업이라 수익금은 불우이웃을 돕는 데에 쓸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매장 한쪽에선 권용순(59'동구 불로동)씨가 큼직큼직하게 썬 두부에 김치를 얹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반강제로 먹여주고 있다. 권씨는 이미 주변에서 소문난 '두부 달인'. 이번 행사에도 국산 콩으로 직접 만든 두부를 100모 이상 팔았다.

"2년 전 요리반에서 수강했어요. 남편이 워낙 두부를 좋아해서 예전부터 두부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집에 기계를 들여 국산 콩으로 두부를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왔어요. 시중에 믿을 만한 두부가 잘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국산 콩두부 한 모 3천원. 이윤이 적고 몸은 고되지만 재미삼아 두부를 만든다. 인기 덕에 일찌감치 매진됐다. 그 밖에도 국산 재료로 '웰빙쿡' 회원들이 직접 만든 반찬들이 인기리에 판매됐다.

여러 매장 중 가장 바쁜 곳은 베이커리 매장. 빵을 구워서 매장에 내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팔려나간다. 하루 판매량이 800개에 이른다. 방부제도, 첨가물도 없이 엄마의 마음 그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더 인기가 많다. '빵 마니아' 회원들은 연방 새 빵을 굽고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이번 장터의 인기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도 주문받아 판매해볼 계획이다.

천연비누를 만들어 내놓은 하숙지(62'동구 신암동)씨는 "하루 종일 바쁘지만 좋은 향기를 맡으며 기분좋게 일하니 피곤한 줄도 모른다"고 말했다.

주부들이 직접 문을 연 창업 가게들이 인기를 끈 것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물건을 출시했기 때문. 물건이 믿을 수 있는데다 일반 가게에 비해 20% 이상 저렴하다. 물건이 좋고 저렴하니 자연히 손님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매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번 창업가게는 서각, 천연비누, 규방공예 등 7개팀이 6개월 이상 준비를 거쳐 마련한 것이다. 기존 바자회와는 달리 고급 핸드메이드 물건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 다소 고가의 도자기, 천연비누, 규방공예품들도 인기가 많았다.

동부여성문화회관 채선근 관장은 "우리는 장소만 마련했을 뿐 주부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했는데, 이렇게 열의가 넘치고 물건이 많이 팔릴 줄 몰랐다"며 기대 이상이라는 반응이다. 채 관장은 "여성들이 혼자 창업하려면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은데, 이런 기회를 통해 소비자의 수요도 예측해보고 연습하는 기회로 삼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부여성문화회관 측은 창업 가게가 활성화되면 제수음식 주문이나 김장 주문, 홈패션 주문 제작도 받고 인터넷 장터를 여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도 신청을 받아 매달 수시로 장터를 열 계획이다. 주부의 손맛과 솜씨를 무기로 창업할 수 있는 다양한 물꼬가 트인 것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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