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설이 다 녹도록
김수장
적설(積雪)이 다 녹아지되 봄소식을 모르더니
귀홍(歸鴻)은 득의천공활(得意天空豁)이요
와류는(臥柳)는 생심수동요(生心水動搖)로다
아이야 새 술 걸러라 새 봄맞이 하리라.
한자어가 많이 들어 있지만 봄의 생기가 가득하다. 초장은 '쌓인 눈이 다 녹아 없어져도 봄이 온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로 풀린다. 중장은 한시의 구절을 그대로 옮겨온 듯해도 봄빛이 찬란하다. '귀홍득의천공활'은 '가을에 왔다가 봄에 북녘으로 돌아가는 철새 기러기는 하늘이 넓고 넓어서 의기양양하게 날아가고'라는 뜻. 기러기는 누구라도 잘 알 것이고 '공활'은 애국가 3절에 '가을 하늘 공활한데' 에 나오는 바로 그 '공활'이다.
'와류생심수동요'는 '냇가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버드나무, 수양버들은 얼음이 녹고 물이 흐름에 따라 춘심이 생기고, 얼음에 갇혔던 물도 이제 활기를 찾아 흘러가는구나'란 뜻. 종장은 봄이 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해 지르는 환성처럼 '아이야!'라고 부르고는 '새 술을 걸러라 새 봄맞이를 해야겠다'로 풀린다. 봄을 반기는 심정이 활기차고 싱그럽기 그지없다.
작자 김수장(金壽長 1690~?)은 조선시대의 문인 가객이다. 호는 노가재(老歌齋). 김천택과 함께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을 결성하여 시조 보급에 힘썼고 『해동가요』(海東歌謠)를 편찬했다. 경정산가단은 조선 영조 때 시조를 지어 부르면서 풍류를 즐기던 시조 가객들의 단체로 김천택, 김수장 등이 중심 인물이었다. 이 노래를 지은 김수장은 이름의 뜻이 목숨이 길다는 것인데 그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밝혀지지 않은 것은 그 이름 때문일까 싶은 생각이 퍼뜩 스쳐간다.
산천에 찬란한 봄이 오고 있는데 무엇으로 봄맞이해야 하나? 두터운 외투 벗고 가벼운 옷 하나 갈아입는 것으로 봄맞이를 해야 하나. 기러기 돌아가는 것도, 버들강아지들 꿈틀거리는 것도 보지 못하고 기온이 높아진 것만으로 봄을 맞이하는 건 봄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 하루쯤 젖혀두고 봄이, 찬란한 봄이 어디서부터 오고 있는지 한번쯤은 느껴보아야 할 텐데. 계절만 봄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도 버들에 물오르듯 싱싱하게 밝아지는 그런 봄날, 아! 어디쯤서 오고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문무학·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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